서평

조정래의 『정글만리』를 ‘네 번’ 읽고(2013.12.6)

ycsj 2013. 12. 6. 17:31

 

조정래의 정글만리네 번읽고

   

개혁개방 이후 세계 공장을 거쳐 세계 시장으로 가고 있는 중국은 한국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made/produced in China’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게 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뉴스에서도 거의 매일 중국 소식을 접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수많은 한국인이 중국의 관광 명소를 헤집고 다닐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번역원 등의 지원을 받아 웬만한 작가라면 중국어로 번역된 작품집 한두 권씩 가지고 있고 요즘은 광활한 대륙을 배경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작가들이 출현하고 있다. 그에 반해 중국인의 한국 인식은 한류에 국한되어 있고, 한국인의 중국 인식은 공산 독재와 짝퉁 천국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점에 조정래의 정글만리가 출간되어 상당 기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것은 한국인의 중국 인식을 새로운 지평으로 이끄는 징후라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유난히 잡무가 많았던 가을 학기에 나는 정글만리 네 번이나 읽었다. 내 독서 습관으론 흔치 않은 일이다. ‘처음에는 태백산맥의 작가가 중국 소재 소설을 썼다는 사실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소설로서도 재미있었고, 중국과 관련된 정보도 골고루 잘 요약되어 있었다. 이만하면 중국 입문자에게 권할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당시 연재하던 칼럼에서 소개 글을 쓰기 위해 두 번째읽게 되었다. 그리고 약간의 간격을 두고 이번 서평을 위해 세 번째읽었는데 앞의 두 번과는 느낌이 달랐다. 뭐랄까, 좀 석연치 않은 느낌이었다. 앞에서 들었던 재미는 식상함으로 바뀌고 요약은 나열로 바뀌었다. 그래서 비판적인 입장에서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이 정글만리네 번읽게 된 경위다.

두 번째세 번째사이에 홍콩 영자신문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의 오드리 유(Audrey Yoo) 기자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그녀는 조정래의 정글만리를 통해 보는 한중관계에 대한 기사를 쓰려고 자료를 검색하다가, 내가 9월에 쓴 칼럼을 읽고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칼럼에서 나는 정글만리를 최근 중국 시장에 관한 민족지(ethnography)이자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학습 보고서라는 취지에서, 전대광과 김현곤에게 초점을 맞춰 중국의 긍정적인 풍경 묘사와 심층 해설을 소개했다. 물론 개념화의 약점도 지적하긴 했지만 대체로 강추맥락이었다.

기자의 질문 가운데 정글만리가 상당 기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는 원인에 대한 것이 있었다. 나는 작가의 필력과 서사전략 그리고 민족주의 색채를 들었다. 태백산맥아리랑그리고 한강으로 증명된 작가의 서사 능력은 굳이 여기에서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울러 서하원 등과 같은 입문자가 전대광 등의 베테랑 가이드를 통해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씻고 제대로 인식하는 서사전략은 대부분 서하원 수준의 중국 인식에 머물렀던 한국 독자들의 공명을 자아낸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나아가 전대광이 김현곤하경만 등과의 대화 및 사색이라는 장치를 통해 풀어내는 10년 넘는 중국 생활의 진수는 독자의 선망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작가의 민족주의 색채는 당연하게도 이중 전술을 취하고 있다. 한국/한국인에 대한 칭찬과 외국 특히 일본/일본인에 대한 폄하가 주를 이루고 있다. 똑같은 중국 주재 회사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주재원들은 중국어에 능통하고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데 반해, 일본 주재원들은 통역 없이는 중국인 고객과 의사소통을 못하고 중국인 직원들의 문화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퇴폐 마사지업소와 룸살롱 등을 드나드는 일본 주재원들과 일본인 관광객의 집단 매춘에 대한 묘사는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면서 한국인의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하게 만들고 있다. 동북공정 등에 대한 일방적인 이해 등 정글만리의 민족주의 기조는 다른 장점을 뒤덮을 만큼 두드러진다.

한 가지 추가할 것은 네이버 연재를 통한 입소문 전술이다. “조정래의 정글만리는 올해 325일부터 4개월간 네이버에서 108회 연재한 후 책으로 출간한 것으로 수많은 조회 수와 댓글을 기록하며 화제가 되었다. 입소문이 자자히 나면서 중국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체들에서 신입사원 교육용으로 대량 주문하는 등, 인터넷 연재는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 글에서는 초점인물을 달리해보자. 정글만리는 대하소설 작가의 작품답게 등장인물이 많다. 각양각색의 한국인과 중국인 그리고 외국인이 등장한다. 기업소설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만큼 전대광과 김현곤, 하경만 등의 기업가가 주선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들과는 다른 부류의 인물이 등장한다. 작품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대학생 연인 송재형과 리옌링이다. 미래지향과 장기지속의 관점에서 보면 젊은이의 시각이 중요하다. 송재형과 그의 연인 리옌링은 소설 내 비중이 전대광보다 낮지만 한 나라의 핵심인 대학과 대학생의 삶과 의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작가는 두 사람의 연애를 양념으로 삼아 상호 호감의 시선으로 상대국을 바라보게 설정한다.

송재형은 어머니의 강권으로 경영학을 공부하다가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바야흐로 중국사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는 베이징대 학생이다. 송재형은 앞으로 중국은 틀림없이 미국과 맞먹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2천 년이 넘게 도도하게 흘러온 중국사는 연인 리옌링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그를 유혹하고 있다. 그는 다방면에서 흠잡을 데 없는 전도유망한 귀 밝고 눈 밝은(聰明)’ 청년이다. 자신과 너무 다른 친구 이남근에 대해서도 그 나름의 인생관을 존중할 줄 알고, 이남근의 작은 아버지가 짝퉁 사건으로 공안에 체포되었을 때 석방을 도와주면서 작은 아버지의 삶의 방식과 철학에 대해서도 공감할 줄 안다. 그는 자신의 지향 추구에 엄격하지만 타인에 대한 너그러운 이해심을 갖추고 있다. 그러기에 경영학에서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꿀 때 학교까지 찾아온 엄마를 매정하게 모른 척했지만, 훗날 역사학 전공을 기정사실화 한 후 귀국해서는 에미 맘을 풀어주고 떠날 줄 아는 아들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장성한 청년의 면모도 아우르고 있다.

그는 독자들에게 두 차례의 특이한 경험을 전한다. 그것은 베이징대 학생들의 집단 인터뷰 관찰이다. 한번은 미국 시사주간지와의 공개 인터뷰이고, 다른 한번은 한국 일간지와의 인터뷰이다. 송재형은 인터뷰 관찰을 통해 중국 청년들의 식견과 배짱 그리고 한계를 여실하게 파악하게 된다.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된 미국 시사주간지의 인터뷰에서 진행자는 중국인들을 난처하게 만드는 질문들을 쏟아낸다. 예를 들어, 지적 재산권, 애플의 짝퉁 소탕전과 아이패드 상표권 등록 소송, 마오쩌둥 숭배 현상, 중미 관계 등에 관한 질문은 사실 중국의 치부를 건드리는 것들이었지만, 그에 대한 중국 학생들의 답변은 서양 중심의 논리를 반박하면서 중국 상황에 맞는 논리를 개발해 대응했다. 송재형이 놀라고 감탄한 것은 이들의 거칠 것 없는 발언과 배짱이었다. 특히 미중 관계를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친구로 대하면 친구고, 적으로 대하면 적이라는 답변을 듣고는 충격을 받고, 마오쩌둥 신격화에 대한 질문에 대해 신은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이라는 답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런 답변은 한국 학생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의 붉은 별을 통해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에 대외에 보도했던 에드거 스노의 무덤에서 시작한 한국 기자들과의 인터뷰는 중국 학생들의 역사의식과 현실 인식을 묻는 것이었고 나아가 동북 공정과 같은 미묘한 문제도 있었고 짝퉁과 같은 거북한 질문도 있었지만, 중국 학생들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의연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한국에 대한 중국 대학생들의 다양한 평가는 한국 독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 가득하다.

총명하고 자유분방하면서도 심지가 굳은 베이징대생 리옌링은 송재형의 연인이자 심층 가이드다. 그녀를 통해 송재형은 전공을 중국사로 바꿨고 그녀를 따라 두 번의 인터뷰에 참가했으며 난징대학살 현장 탐방 및 대토론회에도 참석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그녀의 아버지 리완싱으로, 그는 중국 이해를 위한 심화 텍스트다. 리완싱은 개혁개방의 바람을 타고 떼돈을 번 벼락부자(暴發戶)의 전형이다. 그는 프랑스 명품회사의 보석 가공과 옥공예 하청 회사를 운영하는 동시에 폭죽 공장, 향 공장, 비닐제조 공장을 거느리고 값싼 노동력과 장인의 재주를 최대한 활용해 떼돈을 벌고 있다. 명품회사 중국 지사장 자크 카방과 그는 애초에 갑과 을의 관계였다. 그러나 현지화한 자주색 리화(梨花)’ 명품 지갑이 성공을 거두면서 명품회사의 동업자가 되고는 그와 자크 카방의 관계는 역전되었다. ‘각 민족마다, 각 국가마다 심층 저 깊이 뿌리발을 하고 있는 그 무엇을 외국인은 알 수 없고 오로지 오랜 시간 현지에서 관찰한 본국인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돈벼락을 맞은 졸부들 덕분에 너무 비싸고 기름 많이 먹어 비실비실하던 롤스로이스창업 이후 최대 호황을 맞고 있다.” 그들은 자주색 대리석 호화 주택을 짓고 얼나이(二奶)들을 거느리고 벌금을 물면서 자식을 낳는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은 이들을 당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축첩은 고위 공무원과 대부호들의 유행이다. 젊고 똑똑한 여성들을 얼나이로 거느리면서 손님을 초대하곤 그녀들에게 식사 시중까지 들게 한다.

리완싱의 파트너 자크 카방은 중국의 급변을 보여주는 매개다. 송재형의 관찰과는 달리, 자크 카방이 볼 때 중국인들은 서양인들, 특히 프랑스인들에게 무조건 친절하다. 자크 카방은 이런 친절을 프랑스사람에게 보이는 중국인다운 호감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한밤중에도 급박한 항공권 예약이 해결되는 중국은 G2다운 변모를 보이고 있고 G2의 등극과 함께 중국은 일본을 걷어차고 명품시장 고객 2위에 올랐다. ‘발 빠르게 변모해 가는 모습에 감탄하고 당황하면서도 그 중국으로 인해 자신이 편안한 향락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다.

작가는 자크 카방의 체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중일의 백인 선호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연미복으로 대변되는 일본사람들의 서양 흉내 내기부터 일본의 서양화 갈망을 논하면서 그와 동전의 양면인 동양인에 대한 경멸과 천시를 비판한다. 한국인도 그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특히 한국 대학생들의 인종차별은 도를 넘어선다. 중국인들의 백인 선호는, 일류미녀는 바다를 건너가고부터 시작해 외국 기업가의 얼나이, 사업가, 선전과 주하이, 가라오케 호스티스, 광저우와 상하이로 간다는 순커우류(順口溜)에서 그 극치를 보여준다.

이제 정글만리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차례다. 우선 앞에서 언급한 민족주의 외에 남성중심주의를 들 수 있다. 숭녀공처(崇女恭妻)라는 중국의 사회적 가치관에 대해 작가는 중국여자들의 성 문란과 연계시키곤 한다. 마오쩌둥이 시행한 여성 해방으로 인해 중국은 여자들에게는 천국이지만 남자들에게는 지옥이라는 것이다. 한자 실력까지 동원해 남()성은 밭에 나가 일하므로 가사노동은 여자가 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에 따른 역할 분담이고 업무 분업이라는 인식을 읽다 보면 고루한 가부장의 모습이 느껴진다. 그러기에 여성의 성적 자유를 성적 문란으로 비판하지만 남성의 성적 타락에 대한 비판은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전대광이 김현곤을 찾아 시안에 갔을 때 싼페이(三配)를 낭만이자 멋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는 한자 남()에 대한 해석을 전제할 뿐, 그 글자가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꿈도 못 꾸고 있는 것이다.

정글만리의 성공과 문제점의 핵심에 전지적 작가 시점이 도사리고 있다. 모두 알다시피, 전지적 작가 시점은 현대소설에서 거의 쓰지 않는 기법이다. 전지적 작가는 중세의 신에 해당한다. 작가는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독자들은 작가가 알려줘야만 정보를 알 수 있다. 이것이 전지적 작가 시점의 존재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작가는 중국에 무지한 평균 한국인을 독자로 설정하고 자신의 학습 심득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소설적 맥락에서도 전지적 작가 시점만큼이나 어설픈 장치가 도처에 드러나고 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그리고 미묘한 것임을 작가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느 순간 복잡하고 미묘한 마음을 털어내고 단순한 확성기로 바뀌고 만다. 누구를 막론하고 작가의 손에 걸리면 대변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작가는 중국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건드리면서 고희의 언덕에서 이런저런 심득을 토로하고 있지만, 깊이있는 새로운 성찰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정글만리는 현재 평균적인 한국인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중국 입문서 성격을 띤 기업소설이고, 기업소설의 옷을 입은 계몽소설이. 그리고 급변하는 중국이라는 제재를 빈 작가의 강연집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글만리는 눈 밝은 독자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력과 경륜을 갖춘 작가가 맘먹고 만든 중국 관련 기업소설 또는 계몽소설에 많은 독자가 환호하고 있다면 그 나름의 효용이 있는 법. 중국학습자 조정래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그의 학습노트를 지침으로 삼아 중국을 학습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태백산맥의 애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작가 조정래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