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1980년대 중국 영화론

ycsj 2015. 1. 16. 14:00

한국과 중국에서 1980년대는 격동의 시절이었다. 한국은 1980년 광주민중항쟁으로 시작해 ‘1987년 체제수립으로 마치 민주화운동이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1987년 체제는 군부 권위주의를 종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전략을 사회운영의 원리로 삼은 결과, 민주주의를 배반하는 각종 정책을 펼쳐왔다.

중국도 1978년 사회주의 현대화를 구호로 삼아 시작된 개혁개방이 사상해방의 물결로 이어졌지만, 결국 1989년 톈안먼 사건 진압으로 귀결되었고 이후 이른바 ‘64체제가 수립되었다. 해방 이후 각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길을 걸어온 한국과 중국이 공히 격동의 1980년대를 거쳐 각각 ‘1987년 체제‘64체제라는 신자유주의적 체제로 진입한 것은 흥미롭다.

어느 시대나 오케스트라의 제1바이올린 역할을 하는 문예 장르가 있다. 우리가 흔히 선진-진한 산문(先秦-秦漢 散文), 당시(唐詩), 송사(宋詞), 원곡(元曲), 명청소설(明淸小說)이라 일컫는 것이 바로 그러하다. 그러면 1980-90년대 중국에서 제1바이올린 역할을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당연히 영화를 꼽아야 한다.

류원빙의 중국 영화의 열광적 황금기는 바로 ‘1980년대 중국 영화를 다루고 있다. 1967년 생인 저자는 개혁개방 이후 10대를 보냈고 그 시절 영화관을 파라다이스로 기억하고 있다. 문화대혁명 시기 억압되었던 중국 영화가 한 달에 15편 가량 제작 상영되었고 외국영화도 미국과 서유럽, 소련과 동유럽뿐만 아니라 제3세계 영화들이 다양하게 공개되었다. 뿐만 아니다. 서양의 이른바 고전영화들, 예를 들어 채플린 영화들도 관객들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 이런 호강을 누린 저자가 그 시대를 열광적 황금기로 소환하는 것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컬러텔레비전의 보급 이후 영화의호시절이 지속되지 않은 사실도 알고 있기에 1980년대는 중국 영화사의 중요한 시기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 출간되는 중국 영화의 열광적 황금기는 독특한 체제를 가지고 있다. 4장으로 구성된 본문에서 저자는 각각 이데올로기, 문화 번역, 배급과 검열, 스타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논술하고 있다. 이는 저자의 말대로, 영화학에 그치지 않고, 영화 문화 또는 사회학적인 접근 방법으로 영화를 중층적으로 점검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포스트 문혁기, 르네상스기, 침체기, 뉴웨이브 대두, 다양화 시대, 전환기의 여섯 시기로 나누고 있다. 그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사회주의/문혁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면서도 그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던 1980년대는 문혁의 고난을 다룬 상흔영화와 개혁개방 정책과 덩샤오핑을 다룬 개혁영화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문혁을 비판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쓰인 표현 수법은 선악 이분법에 사로잡힌 문혁 코드 그 자체였음을 간과할 수 없다. 무중풍경의 저자 다이진화(戴錦華)의 말을 빌면 탈주하다 그물에 걸림이다. 이는 곤경에서 탈출했지만 더 큰 그물에 걸린 격인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사회적문화적 콘텍스트를 비유한다. 1980년대가 문혁에서 탈출했지만 문혁의 문화심리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형국을 지칭한 것이다.

2. ‘문화 번역(cultural translation)’은 최근 흥기하고 있는 번역 연구(translation studies)’의 핵심 개념의 하나다. 저자는 개혁개방 이래 서양 문화가 중국에 수용되는 과정을 문화 번역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중 차원의 댄스 유행과 앙드레 바쟁의 실험 예술 수용에 초점을 맞춰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이 단순하게 일방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내부의 상상력과 외부의 상호작용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3. 중국 영화의 제작, 검열, 배급 구조는 독자가 쉽게 접하기 어려운 분야다. 저자는 사회주의 현대화/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영화 시스템에 미친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을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4. 이 부분은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문혁 이후 국민배우 반열에 오른 류샤오칭과 조안 첸에 대한 분석을 통해, 사회주의 시스템의 스타 소비 형태와 시장 자유화에 따른 여배우의 물신화 경향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1980년대 이래 중국 사회의 변화상이다.

1980년대 중국은 과연 어땠을까? 이를 위해서는 톈안먼 사건의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뤼신위(呂新雨)1990년대 중국에서 진행된 신다큐멘터리 운동을 관찰하면서 그 발전을 이론적으로 개괄한 바 있다. 그녀의 관찰과 인터뷰에 따르면, 중국 다큐멘터리는 1995년에 처음 제작되었지만 다큐멘터리 운동이 1980년대의 정신과 혈연관계에 있다고 판단하고 그 발전방향은 우원광(吳文光)유랑 베이징(流浪北京)에서 기초를 다졌다. 그리고 1990년대 다큐멘터리의 효시인 피안(彼岸)의 감독 장웨(蔣樾)는 다큐멘터리 제작과정 자체가 자아해부이자 자아비판이고 정화과정이라고 표현했다. 뤼신위가 보기에 중국의 신다큐멘터리 운동은 중국 사회변혁 및 사회 담론 공간의 개편과 심층 연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새로운 이상주의가 신앙되고 실천된 시대, 새로운 유토피아 시대였던 1980년대는 신다큐멘터리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89년 톈안먼 사건은 유토피아를 추구하다가 좌절한 것이고, 그 폐허에서 침착하게 중국 현실 문제를 사색하게 된 계기는 바로 신다큐멘터리 운동이었다. 1990년대 시작된 중국 신다큐멘터리 운동은 1980년대 개혁정신의 연장이었다.

톈안먼 사건을 진압함으로써 덩샤오핑 체제를 공고히 한 ‘64체제가 완성되었는데,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중국적 신자유주의 체제의 완성이었다 할 수 있다. 류원빙의 이 저작이 중국적 신자유주의로 나아가는 시점에 중국 영화의 열광적인 황금시절이었던 1980년대에 대한 만가(輓歌)로 들리는 것은 나 혼자만의 환청은 아닐 것이다.

 

 

* 이 글은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류원빙, [중국 영화의 열광적 황금기](산지니, 2015.1)의 추천사로 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