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학문 그리고 정의
번역 소개한 장청즈의 글 가운데 「문학과 정의」는 지난 4월 28일 성공회대에서 했던 특강을 요약한 것이고, 「세계와 우리의 학술」은 특강 주제와 관련된 것으로 장청즈가 참고자료로 보내온 것이다. 강연 원고를 보면 알겠지만, 장청즈는 「문학과 정의」의 첫 문단을 칭화부중의 홍위병운동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2012년 10월 경 자비 출간한 『정신의 역사(心靈史)』 개정판 전언(前言)의 요약문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나는 위대한 1960년대의 아들로 그 감동과 무게를 짊어지고 있어 발과 가슴은 온통 가시투성이다. 그 시대의 패배와 그 시대의 의의는 나로 하여금, 멀리 지구 각 구석에 있는 동지들과 마찬가지로, 일생동안 자아비판과 정의 계승의 길을 추구하게 했다.” 1960년대는 진정 위대한 혁명의 시대였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그랬고 프랑스에서 시작된 68혁명이 그랬다. 전자는 국가 권력의 개입으로, 후자는 강고한 자본의 벽을 넘지 못함으로 인해 실패를 고했지만, 장청즈는 그 위대한 혁명 시대의 아들을 자처하고 ‘위대한 시대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평생의 삶을 살고 있다.
「문학과 정의」에서 장청즈는 소수민족 출신의 중국 작가인 자신이 30년 전에 출간했던 장편소설을 3년에 걸쳐 수정했지만 출판사를 찾지 못해 자비로 출간했고 그 가운데 정장본 750부의 수익금 10만 달러를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 이슬람식 희사(喜捨)인 자카트(zakat. 天課) 방식을 통해 전달한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과정은 바로 장청즈가 말하고 있는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인 셈이고 그것은, 그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추상화 방식으로 말하자면, ‘소수자의 국제적 연대’에서 나온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장청즈는 2010년 3월 정식으로 『정신의 역사』 수정을 시작해 2011년 9월에 완성, 서북지역의 두 도시에서 편집했다. 이 과정에서도 계속 수정했다. 2012년 『정신의 역사』 개정판 750권을 가죽표지와 은박 제호 등의 호화장정으로 출간했다. 책에는 독자에게 “수익금 전부를 빈민 구제에 쓰겠다”라는 약속을 밝혔다. 5월 24일 정장본을 베이징에 가져와 7월 상순 권당 1,500위안의 가격으로 모두 팔았다. 9월 7일 중동으로 가 9월 12-15일 요르단 경내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가서 개정판 수익금을 기부했다. 그는 모두 5개 마을의 476가구 팔레스타인 난민 및 요르단의 가난한 농민들에게 10만 달러를 기부했고, 「사해(死海)를 넘어」라는 제목으로 다섯 차례 강연을 했다. 그리고 이 과정을 10월과 11월 사이 상하이 아시아사상포럼과 난징대학과 푸단대학 및 베이징에서 4차례 보고했다.
나는 문득 장청즈의 지난 40여년 삶의 역정이 궁금해졌다. 위대한 혁명의 시대에 참여했다가, 비록 실패했지만 그 시대정신을 잊지 않고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아온 한 혁명가의 삶이 궁금해진 것이다. 1948년생인 그는 홍위병운동에 참여했던 칭화부중을 졸업하고 베이징대학 역사학부에 입학하기 전 1968년부터 1972년까지 내몽고로 하방되어 현지인들과 같은 조건에서 생활하는 특수한 경험을 한다. 칭화부중과 베이징대학이라는 엘리트 코스에 끼워진 내몽고 생활 4년은 장청즈의 원체험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1978년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생에 합격함으로써 학자의 길에 들어선 장청즈는 같은 해 몽골어로 지은 시 「인민의 아들」과 단편소설 「가수는 왜 어머니를 노래하는가」를 발표했고 후자가 제1회 전국우수단편소설상을 받음으로써 문학의 길에 접어들었다.
쾅신녠(曠新年)은 이렇게 평한다. “장청즈와 루쉰은 20세기 전반과 후반의 빛나는 문학 대가이자 ‘진정한 용사’이다. 그들 두 사람은 순문학을 대하는 태도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시대적 처지도 매우 비슷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은 마지막에 허구적인 문학 창작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장청즈를 읽을 때 작가와 용사 외에도 학자와 지식인이라는 키워드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작가이면서 학자인 장청즈는 중국 지식인으로는 드물게 이슬람적 세계관을 체화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세계사는 1492년에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다. 그해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해로, 콜럼버스가 미주대륙을 발견한 해인 동시에 800년간 지속되어오던 이슬람 문명의 중심지인 그라나다가 함락된 해이기도 하다. 오늘날 세계의 과제를 자본주의 극복이라 한다면 1492년은 서양에서 발원한 자본주의가 해양을 통해서 비서양으로 확장된 동시에 자본주의의 육로 확산을 막고 있는 이슬람 제국의 포위망을 뚫은 것이다. 이후 세계사는 서양 ‘대국’의 식민 정복의 역사였고 부르주아계급의 잔혹한 포식의 역사였다. 장청즈의 문제제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슬람 문명은 고대의 수호자 역할을 하면 서양의 자본주의 포식자로부터 비서양 전체를 수호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자본주의를 종식시키려면 이슬람적 가치는 중요한 사상자원의 하나가 될 것이다.
‘총체적 미국화’가 심화됨으로 인해 ‘절망 사회’로 전락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최근 ‘유럽적 가치’가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식민의 주체였고 지금도 그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유럽적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역사적 고찰과 비판의 병행이 필요하다.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적 가치의 헤게모니적 지배가 새로운 유럽적 가치를 발생시켰으며, 이 새로운 유럽적 가치가 아시아적 가치와 수렴하는 경이로운 현상”이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이 되기 위해서는, 유럽의 역사가 정복하고 수탈하고 끊임없이 타자화의 대상으로 삼아온 이슬람적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변과 생산적 성찰이 필요한 지점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장청즈가 팔레스타인 난민을 현 세계의 ‘약한 고리’로 생각하고 그들을 돕는 것이 위대한 혁명 시대의 아들이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정의’의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공감을 할 수 있다. 성공회대 강연에서 보여준 50장 가까운 사진들은 200달러씩 담은 500장의 봉투에서 시작해 그것을 전달하는 과정과 아울러 모금 과정에서의 여러 가지 사연들이 빼곡히 들어있었다.
장청즈가 어느 순간부터 허구에 염증을 느끼고 소설을 쓰지 않는 것 또한 이상하지 않다. 그런 그에게 평론가들은 말한다. 루쉰과 비슷하다고. 말년의 루쉰도 소설보다는 전투적인 산문을 통해 논쟁에 몰두했다. 그는 답한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루쉰 시대는 논쟁의 시대였지만, 자신이 살아온 시대는 논쟁을 불허한다고.
“내용과 표현 모두 다수적인(지배적인) 문학에 반하는 정치적 문학인 소수적 문학으로 정립했다”는 평을 받는 카프카의 “모든 작품에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유대인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도이취어로 작품을 써서 소수적인 문학을 정립했는데, 그것은 언어의 탈영토화,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직접성의 연결, 언표행위의 집합적 배치라는 특징을 가진다. 이 글은 장청즈의 문학세계를 논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지만, “거대한(혹은 기성의) 문학이라고 불리는 것 안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문학의 혁명적 조건을 뜻하는” ‘소수적’이라는 개념은 장청즈의 문학세계를 운위할 때 결락시킬 수 없는 관건어로 보인다. “소수적이지 않은 위대한 문학이나 혁명적 문학은 없다. … 자기 자신의 언어를 소수적인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 … 자기 자신의 언어 안에서 이방인처럼 되는 것”은 카프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장청즈는 강연 마지막에 성공회대 학생들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성공을 도모하지 말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했다.
이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성공과 정의를 변증법적으로 절합 시켜 정의를 성공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정의가 더 이상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과 정의로운 사람의 ‘묘비명’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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