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근대사상사론]이 지난 5월 30일자로 5년 만에 2쇄를 찍었습니다. 2쇄 교정을 보고난 후의 느낌을 아래와 같이 적었습니다.
[부기] 최근 ‘중국의 부상(the rise of China)’에 대한 언설이 저널리즘의 표제를 넘어 학문적 의제로 제시되고 있다. 그 가운데 ‘세계체계론’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조반니 아리기(Arrighi, Giovanni)의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Adam Smith in Beijing)』(2007)는 주목을 요한다. 아리기는 현재 진행 중인 세계 정치경제의 중심지가 북아메리카에서 동아시아로 이동하는 현상을 애덤 스미스의 경제 발전론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그는 우리 인류 앞에 부상하는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시장 사회(a world-market society)’의 길과 기울어가는 미국이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세계 제국(global empire)’의 길이 놓여 있다고 제시한다. 물론 아리기가 전망하는 것은 아시아와 유럽의 두 유산이 근원에서부터 교배하여 열매를 맺는 ‘신아시아 시대’(the new Asian age)이다. 신영복 선생 또한 중국이 ‘자본주의를 소화하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지양(止揚)한 새로운 구성 원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류가 나아갈 제3의 길의 가능성을 내다보는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사회주의 중국이 전지구적 자본주의를 수용해서 어떻게 변화했고 어떤 길로 나아갈지는 인류의 역사에 중요하다. 그런데 이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봉건 중국이 아편전쟁 이후 자본주의 서양을 학습하는 동시에 배척했던 ‘근대’ 80년의 시간이 중첩된다. 리쩌허우는 근대 진보 사상사의 과정을 ‘부정의 부정’으로 개괄했다. 1850년대 태평천국의 농민혁명 사상은 봉건 중국의 지주 토지소유제를 타파하고 지주 정통사상과 대립함으로써 봉건사회의 종결을 선언했다. 이는 고대 농민혁명 사상의 총결이었다. 이어 등장한 1870∼90년대의 자유주의 개량파의 변법유신 사상은 태평천국 혁명 사상을 부정하고 부르주아 자본주의적 발전방향을 제시했다. 1900년대의 혁명파 민주주의의 ‘삼민주의’ 사상은 두 사조의 합리적 내용을 취하고 ‘평균지권’과 ‘토지국유화’라는 사회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농민을 주체로 설정하지 못했고 자본주의의 진보적 개혁을 실행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개량파와 혁명파는 태평천국의 나선형 상승의 일환이고 첫 번째 부정일 뿐이었다. ‘부정의 부정’은 고급 형태의 농민전쟁을 수행한 ‘신민주주의’ 혁명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길고 험난한 여정을 거쳐 도달한 사회주의 중국은 지금 ‘새로운 부정의 부정’ 과정을 맞이하고 있다. 전지구적 자본주의를 수용하고 있는 중국에게 확실한 것은 어디론가 ‘이행(transition)’중이라는 사실뿐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궁극적 승리가 될지, 아니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견지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제3의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면 바로 ‘근대’ 중국의 지식인들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더듬었던 역사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최근 중국의 ‘현당대(現當代)’ 학자들이 ‘근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국의 현당대문학 연구와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를 대표하고 있는 상하이대학의 왕샤오밍(王曉明) 교수는 서양 이론을 가져다 중국의 급격한 변화를 해석하고 출로를 전망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1980년대의 보편적 믿음이 1990년대 들어 사라졌음을 인식한 후, 1949년 이전 중국의 자생적인 진보적 사상자료 발굴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근대’ 쪽으로 연구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신좌파’의 명망을 한 몸에 아울렀던 칭화대학의 왕후이(汪暉) 교수는 2004년에 출간한 『현대 중국사상의 흥기(現代中國思想的興起)』에서 중국사상을 하나의 연속선으로 파악하면서 상권 제1부에서 한당(漢唐)과 송명(宋明) 그리고 청(淸)을 다루었고, 상권 제2부와 하권 제1부에서 이른바 ‘근대’를 다루었으며 하권 제2부에서 5·4 이후를 다루고 있다. 이들의 선배 세대인 중국사회과학원의 자오위안(趙園) 교수와 산터우(汕頭)대학의 왕푸런(王富仁) 교수도 일찍부터 ‘근대’를 거슬러 올라가 전통을 재해석하는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리쩌허우 선생의 『중국근대사상사론』은 이들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 할 수 있다.
5년 만에 다시 출간하면서 불교 관련 역주를 대폭 손질했다. 초판에서 옮긴이 나름대로 이런저런 참고자료를 찾아 역주를 달았는데, 전문가의 눈에는 요령부득이었던 것 같다. 불교 관련 역주의 수정과 보완은 불교사 전문가인 김영진 교수가 『중국 근대사상과 불교』(2007)에서 역주의 오류를 언급해준 것에 힘입었다. 옮긴이의 질의에 귀찮음을 마다하지 않고 꼼꼼하게 보완 설명해준 김영진 교수에게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곽철환 편저의 『시공 불교사전』과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참고했다. 그 외에도 일부 오역과 외래어 표기 등을 손보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진함이 남는다. 강호 제현의 질정을 기대한다. (2010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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