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New Trinity in Today’s Shanghai: Real Estate Market as A Example」(by Wang, Xiaoming)을 읽고

ycsj 2009. 10. 24. 15:09

상하이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으며 생활해온 왕샤오밍 교수는 발표문에서 자신의 오랜 경험과 섬세한 관찰을 바탕으로, 상하이 부동산 시장의 분석을 통해, 부동산-광고-이데올로기의 새로운 삼위일체 모델을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왕 교수의 표현을 빌면, 새로운 도시공간, 광고를 통한 새로운 이미지 인지 훈련 그리고 새로운 사회권력/분배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왕 교수에 의하면, 1949년 인민해방군의 상하이 점령 후 1950년 [토지법]이 반포되면서 완전히 궤멸된 상하이 주택/부동산 시장은, 1980년대 중기 부족한 주택을 공급하고 정부가 개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토지를 상품화함으로써 재건되었다. 현재 주택/부동산 사업은 중국 경제의 기간산업의 하나가 되었고, 2009년에는 중국 경제의 침체를 벗어나는 기관차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주택/부동산 시장의 팽창과 동보적으로 전개되는 상하이 도시공간의 새로운 구획에 주목한다. 왕 교수에 의하면, 1980년대 말 이전의 6개 공간-공공 정치공간, 공업생산공간, 상업공간, 거주공간, 교통 및 기타 사회 서비스공간, 공원 등의 공공 사교공간-의 구성이 개혁개방 이후 크게 변화했다는 것이다. 그 변화는 공공 정치공간과 공업생산공간이 대폭 감소하고, 공공 사교공간은 대폭 줄어든 반면, 상업공간과 주택공간 그리고 정치 공무공간이 크게 확대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공공 정치공간의 축소와 정치 공무공간의 확대는 광장 정치에서 행정 정치로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고, 표준화된 상업공간의 확대는 자본주의 소비/시장 요소의 확대를 대변하고 있다. 왕 교수가 주목하는 공간의 재구성은 바로 ‘주택 중심의 새로운 조합 공간’이다. 그것은 주택, 상업, 교통 간선도로, 대학, 은행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 이는 상하이 도시공간 변화의 가장 주요한 길잡이 새가 되었다고 한다.

 

장기지속(longue durée)의 관점에서 중국 근현대사를 바라볼 때, 개혁개방 30년은 사회주의 30년 이전 시기의 부활(revival)로 볼 수 있다. 상하이 노스탤지어 붐에서 볼 수 있듯이, 1920-30년대 국제적 수준에 올랐던 중국의 자본주의는 사회주의 30년 동안 ‘숨은 구조(hidden structure)’로 억압되었다가 포스트사회주의 시기에 부활한다.1)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 전역에서 일어난 ‘상하이 노스탤지어 붐(上海懷舊熱)’은 그 부활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는 ‘중국적 특색의 자본주의’라 할 수 있고, 이를 왕 교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라 명명한 바 있다. 발표문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주택과 부동산은 사회주의 이전 시기에 상품으로 거래되었다가 사회주의시기에는 ‘자원(資源)’으로 규정되었지만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에서 상품자본으로 새롭게 부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토론자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동아시아적 시각’2)의 필요성이다. 현재 상하이를 대표로 하는 중국의 주택/부동산 시장의 활성화 내지 투기 현상은 한국에서 심상(尋常)한 일이며, 일본도 오래 전 부동산 투기 붐3)이 있었고 그 후유증을 최근에서야 벗어났다는 평가가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어렵사리 안정시킨 주택/부동산 시장이 최근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상황은, 왕 교수가 분석한 상하이 주택/부동산 시장과 흡사하다. 한국에서는 교육시장이 부동산 시장을 선도하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우뚝하지만 그만큼 그늘이 깊은 일본, 개발독재를 통한 압축성장 이후, 민주화와 불황이 손잡고 찾아온 한국, 그리고 개혁개방 이래 경제적 풍요를 향해 질주한 끝에 신판 양무(洋務)의 위기에 직면한 중국.’4)이처럼 일본-한국-중국은 약간의 시간차와 특수성을 가진 채 각국의 특색을 가진 자본주의를 발전시켜왔다.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식인들이 때로는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때로는 불모이합(不謀而合)으로 소통하고 있음은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5)동아시아의 소통과 연대는 주택/부동산 정책에서도 필요한 일로 보인다.

 

이는 또한 개인의 욕망과 공공선(公共善)의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선전하는 ‘미국식 생활방식(American life style)’의 표준을 내면화(internalization)해서 자신의 삶을 수정해가는 수많은 개인들은 바로 ‘주택 상품화’의 물적 토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국가권력을 배경으로 ‘밑천 들지 않는 장사(無本生利)’를 통해 ‘토지를 자본화’하고 있는 정부는 공공선과 거리가 있다. 그러므로 주택/부동산 시장은 “개인에게는 가혹하고 정부와 개발업자(또는 투기꾼)에게는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시장으로 성장”했고 그것은 주식시장 못지않은 투기의 현장이 되었던 것이다.6)

이 지점에서 주택 광고는 개인의 욕망을 호명하는 주요한 메커니즘이 된다. 왕 교수는 주택개발상들이 주택광고의 문구와 주택을 등호화함으로써, 마치 주택을 구입하면 광고문구가 현실화될 것처럼 광고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롤랑 바르트의 ‘신화화(神話化)’를 연상시킨다. 주택이라는 1차 의미작용은 광고를 통해 새로운 계층의 부와 문화, 교양을 의미하는 2차 의미작용으로 바뀐다.

그렇다면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과연 누가 조작하는가 라는 문제가 떠오른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 마틴 자크(Martin Jacques)는 최근 저서7)에서, 위안(圓)화가 달러를 대신하고 상하이가 세계 금융 중심지로 떠오르며 중국어가 영어와 함께 세계 공용어로 자리 잡는 ‘팍스 시니카(Pax Sinica)’의 미래를 묘사하고 있다. 그는 ‘팍스 시니카’가 중화주의를 기반으로, 조화와 안정을 중시하는 평화주의적 성격을 띨 것으로 낙관했다. 이처럼 세계는 지금 중국을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 차이나(global China)로 나아가는 중국을 주도하는 세력의 성격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구성하고 창안하며 조직하기 때문이다. 통합과 저항이라는 그람시의 관점에서 새로운 이데올로기 조직자와 그에 대한 비판과 저항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기를 부탁한다.

 

마지막으로,한국에서는 대체로 사교육시장이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학군제와 사설학원이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주고, 비싼 아파트는 좋은 학군과 사설학원에 인접하기 마련이다. 이는 한국의 교육열과 학벌(學閥) 사회적 특성에서 비롯한 특이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중국도 교육열이 뜨겁다고 들었다. 주택/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교육시장의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기 바란다.

 


1) 한 가지 문화전통이 다른 문화전통에 의해 억압되어, 표면적으로는 소멸되었지만 ‘숨은 구조’의 형식으로 심층에 숨어 있다가, 새로운 환경에서 회복 내지 부활하는 현상을 ‘근현대 전통의 부활’(the revival of the modern tradition)이라 명명할 수 있다.

2) 쑨거(孫歌)는 기존의 동아시아 시각으로 전통 유학의 시각, 근대화 시각, 그리고 전쟁에 관한 상흔의 기억이라는 시각을 들고 있다. 그러나 첫 번째 시각은 그것이 전성기를 누릴 때조차 이데올로기로서의 유학은 이 한중일 세 나라를 하나로 포괄하는 데에 아무런 매개 역할도 수행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했고, 근대화 시각에 대해서는 동아시아를 서유럽을 따라잡거나 그것에 대항함으로써 근대화의 구현을 도모하는 지역으로 간주하면 동아시아 각국은 타국을 서방을 따라잡는 일종의 경쟁 상대로 파악함으로써 동아시아 시각 확보에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마지막은 전쟁기억과 관련된 것인데, 이 관점에서 보면 “일본은 동아시아의 잔혹한 접착제”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쑨거는 일본의 진보세력이 전쟁책임의 규명과 전쟁기억의 정확한 전승을 위해 수행한 노력을 낮게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쑨거(2009) 참조.

3) 일본의 버블 경제(Bubble Econonomy)와 그 붕괴: 1985년 5개국(미,영,독,프,일) 프라자합의(Plaza Accord) 이후 사상 최대의 엔고가 나타남과 함께 시중 은행의 자금이 대량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주식 및 부동산 시장에 이상 활황 현황이 나타났다. 그런데 1990년 토지 관련 융자금지와 함께 찾아온 ‘버블 붕괴’로 일본 경제는 갑작스런 냉각기를 경험하게 된다. 버블 붕괴 이후의 이른바 ‘잃어버린 10년’ 및 불량채권 문제 등은 일본 경제에 대한 개혁 문제와 관련하여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인 논점이며, 현재의 경제적 활황 무드 속에서도 버블화에 대한 경계가 고개를 쳐들곤 한다. 다카하라 모토야키(高原基彰 2007), 정호석 옮김,『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불안형 내셔널리즘의 시대, 한중일 젊은이들의 갈등 읽기』, 삼인, 36-7쪽. 일본의 주택/부동산 가격이 최고점이었을 때, 東京의 주택/부동산 가격으로 美國 전체를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4) 최원식(2009),『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창비, 파주.

5) 비판적 지식인들의 연대와 관련해서, “긴장관계를 연대의 형식으로 삼아 파악하는 능력”(孫歌 2008)을 배양해야 한다는 쑨거의 언급과 “우리들이 연대해야 할 대상은 인류의 고뇌”라는 아도르노(Adorno, Theodor L. W.)의 성찰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 인터넷을 통해 분출되곤 하는 한`중`일 세 나라 젊은이들의 민족주의 전쟁이란 반일, 반중, 반한의 형태로나마 폭발하는 상호관심의 표출이라는 역설”(최원식 2009)로 보는 견해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전복의 역설이라 할 수 있다.

6) 여기에서 쑨원(孫文)이 제기했던 토지 공개념의 적실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가확정’과 ‘토지공개념’을 골간으로 하는 쑨원의 평균지권은 지금도 참조할 가치가 있다.

7) Martin Jacques, When China Rules the World: The Rise of the Middle Kingdom and the End of the Western World(Allen Lane,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