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리안의『색|계』와 섹슈얼리티

ycsj 2009. 6. 24. 22:21

 

 

리안의『색|계』와 섹슈얼리티

 

  * 국적 불명의 영화! 중국계 미국인 감독이 미국자본에 의해 제작했므로 관례대로라면 미국영화. 그러나 중국에서는 '華人영화'라는 개념으로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리안의『색|계』는 ‘두터운 텍스트(thick text)’다. 다이진화는 그것을 감상하는 다양한 경로로, 국족 정체성, 희몽인생(戱夢人生), 참된 자아(眞我. real self) 찾기, 분열 이야기, 여인과 반지의 이야기, 판본으로 인한 홍콩과 대륙의 자존심 문제, 관음자, 포스트모던 느와르 등을 들고 있다(戴錦華 2008).
 『색|계』의 두터움은 우선 서사구조에서 비롯된다.『색|계』는 최소한 세 개의 이야기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바깥에서부터 보면, 리안의『색|계』, 장아이링의「색․계」, 그리고 딩모춘(丁黙村)-정핑루(鄭苹如) 사건(일명 ‘시베리아 모피점 사건’)이 그것이다. 안의 이야기는 미인계 간첩 이야기로, 이는 장제스(蔣介石) 정부(南京->重慶)와 왕징웨이(汪精衛) 정부(武漢->上海)에 관계된 국민당 내부 모순에 관련되어 있고, 나아가 일본과 연계되어 있다.
  장아이링은 이 사건을 토대로「색․계」에서 이(易)선생과 왕자즈(王佳芝)의 이야기를 모던한 ‘재자 + 가인’의 수준으로 발전 또는 승화시켰다. 논자들에 의하면 이 ‘재자 + 가인’ 모델에는 후란청(胡蘭成)에 대한 장아이링의 정서가 녹아있다고 한다.
  리안의『색|계』는 장아이링의「색․계」를 토대로 삼아 많은 공백을 메우고 있다(“소설은 종점이 아니라 나의 기점(起點)이다”). 이선생을 이모청(易黙成: 丁黙村 + 胡蘭成)으로 명명하고 왕자즈에게도 홍콩대학 생활을 부여함으로써 장아이링의 그림자를 투영시켰다. “개편 후의『색|계』는 장아이링의 원작보다 훨씬 정채롭다! 리안은 장아이링의 음영(陰影)으로부터 자신의 길로 걸어나갔다.”(李鷗梵 2008, 32)
  그리고 문학과 영화, 역사와 재현, 현실과 사이버, 기억과 망각 등의 문제가 놓여있고 아울러 베드신(床戱)과 클립형(자궁 속 태아) 체위 등도 텍스트의 두터움에 일조를 하고 있다. 또한 매국노와의 사랑이라는 금구(禁區)를 정면으로 다룸으로써 ‘금지된 것을 돌파하는 즐거움’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이모청이란 인물은 리안의 주제인 억압과 관련해 흥미로운 인물이다.『결혼 피로연(喜宴)』에서 한 서양인이 ‘중국인의 오랜 성적 억압’ 운운하는 등, 리안의 대부분의 영화가 ‘억압’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부모의 가부장적 억압, 남성 동성애자가 받는 억압 등등. 억압이라는 주제에서 볼 때 이모청이라는 캐릭터는 탁월한 선택(또는 구성)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아무도 믿지 않아 외로운 인물, 어두운 곳이 싫어 영화관에도 가지 않고, 손님이 적기 때문에 맛이 없는 식당을 골라 다니는 인물. 가벼운 화제를 올리기도 어려운 인물. 모든 인간의 눈에서 두려움을 읽어내는 인물, 동창을 처단한 후 애인과 밀애를 즐기는 인물이다.
  이야기의 배경에 1940년대 초 상하이가 놓여 있어 그 ‘문화적 두터움’을 더해주면서 이야기를 사로잡고(haunting) 있다.『색|계』에 재현된 1942년의 상하이 또한 ‘상상된 노스탤지어(imagined nostalgia)’의 자장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기타 재현물과는 다른 풍경(특히 외국인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상점(커피숍, 보석점 등) 직원부터 교통 정리, 레스토랑의 피아니스트 등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배급으로 연명하는 줄선 외국인들과 가창으로 보이는 거리의 외국 여성도 눈에 띈다)을 드문드문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리어우판(李鷗梵 2008)이 상하이 도시문화 전문가의 입장에서 그리고 감독의 동향인의 입장에서 영화에 재현된 상하이에 대해 공과를 평하고 있지만, 대로의 모습은 난징루(南京路)를 벗어나지 못하고 주인공의 패션은『양우화보(良友畵報)』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치파오 여성과 서양식 정장 남성의 조합은 모던한 ‘재자 + 가인’의 패턴을 창출했다. 수십 곳의 치수를 재야하는 모던 치파오는 ‘순수하고 소박한 올드 상하이’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억압으로 변모하여 그 속의 사람들이 숨쉬기 어렵게 만든다. 리안이 구성한 상하이는 또 다른 공간인 침실과 마찬가지로 ‘상상된 공간’인 것이다.
  다이진화(戴錦華 2008)에 의하면, 2007년 가을과 겨울 사이 홍콩과 타이완 그리고 대륙에서 리안의『색|계』는 대대적으로 환영을 받았고 심지어 상하이에서는 영화가 끝난 후 관중들이 기립 박수와 함께 “리안 만세, 만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2007년 베니스영화제 금사자상 수상으로 또 다시 국제적 공인을 받은 리안은 ‘화인의 빛(華人之光)’이 된 것이다. 리안 신화, 리안의 기적, 세계적으로 공인된 감독,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중국계 감독 등의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게, 그는 상업과 예술을 초월(trans)하고 대륙·홍콩·타이완을 넘나들고, 중국어세계와 영어세계를 초월하고 나아가 아속(雅俗)을 초월해 아속공상(雅俗共賞)의 경지를 구축했다.
  똑같은 베니스영화제 금사자상 수상작임에도 불구하고『스틸 라이프(三峽好人)』(賈樟柯)는 일부 지식인에게 호평을 받았지만 중국 대중의 반응은 냉랭했다. 또한『색|계』와 비슷한 수준의 노출(noodle hair)과 금구(禁區)를 다뤘음에도 불구하고『여름 궁전(頤和園)』(婁燁)은 5년의 페널티를 먹었다. 왜 중국 대중은『색|계』에 환호하고, 왜 중국 당국은『색|계』에 관대한가? 똑같은 매국노를 소재로 했음에도 불구하고『곤곤홍진(滾滾紅塵)』(嚴浩)은 상영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색|계』는 버젓이 상영되었을까? 과연『색계』의 감동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사랑의 진정성(authenticity)’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이선생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느낀 왕자즈는 ‘빨리 도망치세요(快走!)’라고 말한다. 이 말을 할 때 후과를 인지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대가로 그녀는 채석장에서 6명의 동창들과 함께 총살당한다. “여성의 마음에 이르는 길은 음도(陰道)를 통한다”는 장아이링의 언급(또는 인용)을 남성이 체득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왕자즈가 다이아반지와 육체적 쾌락으로 구현된 이선생의 사랑을 ‘진정’으로 받아들인 것은 분명하다. 이에 비해『스틸 라이프』에서 돈을 주고 데려왔던 부인이 딸을 데리고 돌아간 지 10여 년만에 모녀를 찾아나선 한싼밍(韓三明)의 이야기는 진정성 면에서 왕자즈의 그것을 압도한다. 한싼밍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지만 관객에게 매력을 주지 못한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섹슈얼리티(seuality)의 부재를 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리안의『색|계』는 섹슈얼리티로 넘쳐난다. 전통적인 ‘재자 + 가인’ 서사모델을 모던한 수준으로 승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베드신 연출은 포르노 뺨치는 수준이다.『여름 궁전』에서도 베드신이 과다하고 누들 헤어뿐만 아니라 성기까지 노출하고 있지만, 극중 인물들은 본능적 욕망에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격변기를 살아가는 위훙(余紅)은 자신의 젊음을 어떻게 발산할지 모르고 사랑과 섹스에 몰두한다. 자신의 부드러움을 몸으로밖에 표현할 줄 모르는 위훙의 어리숙함은 어렵게 들어간 대학도 그만 두고 정처없는 방황을 하게 만든다. 그녀에게 사랑은 그리고 섹스는 삶의 일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외설(猥褻)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는다. 격변하는 중국과 세계를 살아가는 중국의 젊은 남녀에게 섹스는 자연스런 삶의 일부로 녹아있어 그들의 베드신은 호기심과 낭만과 열정과 실연과 고독과 좌절과 배신 등의 체취가 자연스레 묻어난다.『색|계』에서처럼 인위적이고 깔끔하며 특이한 체위와 미장센을 보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훙의 베드신은 섹슈얼리티가 부족하다. 자연스럽고 리얼한 몸은 관객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인위적으로 구성된 몸에 관객들은 열광하는 듯하다.
  두 개의 판본에 얽힌 이야기도 선정적이다. 해외판(타이완 홍콩 포함, 157분)에 비해 9분이 짧은 대륙판(148분)으로 인해 홍콩인들이 우월감을 느꼈다는 기사도 가십 수준이고, 중국 검열 당국이 ‘짜른’ 것이 아니라 감독이 직접 편집했다는 사실은 두 개의 판본 가능성을 운위할 수 있게 하지만, 운좋게 구해본 대륙판을 검토해보면 노출(홍콩에서 왕자즈의 두 번째 베드신 등)과 폭력(曹德禧를 난도질하는 장면 등)이 과도한 부분을 ‘자기검열’함으로써 중국 검열당국에게 약간의 성의를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총명’하거나 ‘교활’한 소위다.
  ‘색계 현상’은 상하이 노스탤지어와 섹슈얼리티, 그리고 국제적 공인 등이 중층적으로 교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물론 국제적 공인의 배후에는 미국의 권위가 존재하고 있고, 미국의 권위에 의해 인정받은 감독에 환호하는 것은 현 중국의 미국 숭배와 미국 상상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문화민족주의의 메커니즘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의 문화민족주의와 미국화 욕망은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 중국을 볼 때 눈여겨 보아야 할 코드다.


[참고문헌]


戴錦華(2008),「時尙`政治`國族-『色|戒』的文本內外」,『영화『色|戒』현상』, 한국중국현대문학학회 2008년도 정기학술대회 발표자료집, 한국중국현대문학학회, 2008.7.3.
李歐梵(2008),『睇色·戒: 文學`電影`歷史』, OXFORD University Press, Hong K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