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역서

학술 자전 (2024.02.01 수정)

ycsj 2023. 12. 26. 09:50

 

두 해 늦게 들어가 1학년 마치고 입대해 만기 전역한 후 대학을 졸업한 탓에 1983년 초여름 뒤늦게 치른 대학원 석사과정 입시 면접에서 추천받은 류다제(劉大杰)중국문학발전사(영인본)를 읽다가, 선진(先秦)과 진한(秦漢)의 제자백가서와 역사서가 문학사에서 서술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그 경이로움으로 인해 중국 고대문화사에서 이전의 모든 강물을 받아들여 이후 모든 강물의 원류가 된 커다란 호수(湖納百川)’와 같은 역할을 해온 사마천(司馬遷)사기(史記)를 망설임 없이 연구대상으로 결정했다. 사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며 중국연구(Chinese studies) 학과로 진학하려다 여의치 않게 된 상황에서, 중국연구의 기초가 고전 공부라고 판단해 중문과로 진학한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연구주제였다. 나는 대학원을 다니면서 수많은 공부 모임을 조직하고 참여했다. 석사과정에서는 주로 대학원생 자체 세미나를 통해 고문(古文) 독해에 치중했다. 사기외에 시경(詩經)초사(楚辭), 사서(四書)상서(尙書), 장자(莊子)등이 주 텍스트였고, 궈사오위(郭紹虞)중국역대문론선(14)은 장시간 독해하고 토론했던 텍스트였다. 중국문학연구회’, ‘외대학술운동연합등을 조직했으며 중문과 대학원생 학회인 이론과실천학회도 만들었다. 나아가 캠퍼스 울타리를 뛰어넘어 청송재(靑松齋)’라는 캠퍼스 연합 학술공동체도 꾸렸었다. 그리고 교수들을 안주 삼아 많은 양의 술을 마셔댔다. 그런데 지금 중어중문학계를 거칠게 조망해보면, 우리가 비판했던 그 수준을 극복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마 지금도 각 대학 캠퍼스에서 선배 세대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셔대는 수많은 학문 후속세대가 있을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면 논문 한 편 쓰는 것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아예 쓰지 않는 것은 본분을 저버리는 일이다.

 

내가 복학해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보낸 대부분 시간은 1980년대와 중첩된다. ‘서울의 봄은 신군부의 반란으로 저물었지만, ‘사자의 시대라는 1980년대는 광주민중항쟁으로 시작했고, 23년의 잠복기를 거쳐 한 점의 불꽃이 들판을 태우듯, 땅속에 잠복한 용암이 분출하듯 타올라 마침내 ‘1987년 체제를 끌어냈다. 이런 사회 분위기로 인해 나는 고문 독해 중심의 고전 공부에 안주할 수 없었다. 때마침 의기투합한 동지들과 당시 한국 사회의 초미의 관심사였던 한국사회성격 논쟁민족문학 논쟁세미나 등을 진행하고 청송재를 조직했다.

 

박사과정 수료 후 근현대문학으로 전환(turn)한 시점에 캠퍼스 연합 혁명문학 논쟁심포지엄(1989) 준비 세미나 참여는 가뭄에 단비 격이었다. 이후 2년에 걸친 세미나와 문예대중화 논쟁’, ‘민족형식 논쟁심포지엄은 내게 근현대문학의 기초를 다지고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토대를 다지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중국현대문학운동사 1(1989), 문학이론학습(1989), 중국통사강요(1991, 2인 공역), 9인의 문예사상(1991, 6인 공역)의 번역 출간은 각각 중국현대문학, 문학이론, 중국사, 마르크스주의 문예사상의 초석을 다지는 공부 과정이었다.

 

나는 한 번도 당시(唐詩)’를 연구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원 석박사과정 지도교수의 전공은 당시였다. 한국의 상당수 교수가 그러하듯 학위논문을 방목형으로 지도하셨다. 다행히 사기를 전공한 젊은 교수가 부임해 그의 도움을 받았다. 「『史記議論文內容技法 分析이라는 표제의 석사논문 지도에서 유일하게 기억나는 지도교수의 논평은 중요한 단어를 한자로 표기하라는 것이었는데, 그 기준이 모호해서 모든 단어를 한자로 표기했다. 그래서 내 석사논문에는 유난히 한자가 많다. 지도교수는 박사논문 주제를 정할 때 당시 내가 관심이 있던 현대문학을 유보하고 당시연구를 권하셨는데, 그 취지는 나를 걱정해서였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결실로 ‘1987년 민주화 체제가 성립되었음에도 1980년대 말 사회 분위기는 중국현대문학 연구자를 빨갱이로 보는 분위기였기에 박사를 마친 후 자리를 잡고 현대문학 연구를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나름 심모원려의 권고였다. 물론 혈기방장했던 나는 그 권고를 따르지 않았다. 내 주제는 문예대중화론이었는데, 논문 심사가 임박해서 지도교수의 유일한 지적은 작품 분석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도받는 처지에서 이론 연구와 작품 연구의 층위가 다르다는 토론을 대등하게 할 수 없었기에, 부랴부랴 장별로 문예대중화의 성격에 부합하는 작품을 골라 추가했지만, 심사 과정에서 그럴 필요 없다는 심사위원장의 지적에 따라 다행히최종 논문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지도교수의 유일한 논평이 심사위원회에서 거부된 셈이었다. 장별로 텍스트 분석을 추가하라는 지도교수의 요구는 심사가 임박한 시점에 커다란 부담이었고 그나마 심사 과정에서 다시 들어내는 촌극을 겪었지만, 이는 2년 후 최초의 단독 저서인 소설로 읽는 현대중국의 뼈대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새옹지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목포대학교 부임 후, 이론 분야에 치중했던 연구의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 소설 텍스트 분석을 주제로 연구계획을 잡았고 학술진흥재단 양서개발 기획에 지원해 선정되었다. 그 결과물이 첫 번째 단독 저서 소설로 보는 현대중국(1995)이다. 이 책은 중국 근현대소설이 중국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가장 풍부하고도 재미있는 사료적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 착안해, ‘지안문(근현대소설)’을 통해 천안문(근현대사)’의 전모를 파악하고 천안문을 통해 지안문의 섬세한 결과 애환을 이해하는 것을 근현대 중국 이해의 경로로 삼았다. 3부로 나누어 루쉰과 위다푸의 중단편소설, 마오둔의 한밤중농촌삼부작’, 딩링의 태양은 쌍간허에 비추고, 루신화의 상흔과 바이화의 고련등의 상흔소설, 장셴량의 자귀나무남자의 반은 여자, 다이허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 천룽의 중년이 되어, 왕숴의 절반은 불꽃, 절반은 바닷물, 고무인간, 노는 것만큼 신나는 것도 없다, 자핑와의 폐도등의 텍스트를 분석했다. 그리고 중국 근현대문학 발전의 윤곽과 동력과 함께 천핑위안의 중국 소설의 근현대화 과정과 류짜이푸의 독백의 시대로부터 다성악의 시대로를 보론으로 실었다.

 

최초의 번역서인 중국현대문학운동사 1은 셴다이(現代)만을 다루었기에 당다이(當代) 부분을 보완해 중국근현대문학운동사(1997)를 편역했다. 1부 반봉건 계몽과 반제 구국의 시기(19171949)와 제2부 사회주의 건설 및 개혁개방의 시기(19491982)로 나누고, 그동안의 공부를 바탕으로 대량의 역주를 첨가했다. 이는 한편으로 1980년대 치열했던 한국의 민족문학 논쟁과 문학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근현대문학운동사가 한국에서 단절되었던 좌익문학의 전통 복원에 훌륭한 참조체계가 될 것이라는 바람도 담았다.

 

이후 매년 책을 내려던 계획은 중국근대사상사론번역 때문에 차질을 빚었다. 그간 셴다이와 당다이에 치중했던 공부 영역을 진다이(近代)와 사상 분야까지 넓히려는 의도와 1993년 한국을 방문했던 첸리췬 교수의 격려에 힘입어 번역에 도전했지만, 저자 리쩌허우가 인용한 텍스트 원문의 번역은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부임 후 첫 안식년을 고스란히 할애해 초고를 완성한 후 틈틈이 수정 작업을 거쳐 2005년에야 출간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번역은 이후 내 공부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사마천과 리쩌허우를 통해 문사철(文史哲)을 아우르고 고금(古今)과 중서(中西)를 넘겨다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할 수 있다.

 

자매대학인 옌타이(煙臺)대학에서 보낸 첫 연구년(1998.91999.8)중국근대사상사론번역 작업에 진력했고 틈틈이 金庸作品集을 탐독했다. 1980년대 한국의 김용 열풍에서 벗어나 있었던 터라, 원문으로 읽는 재미에 푹 빠져 머리맡에는 항상 진융 작품이 놓여있었다. 몇 번이고 읽은 덕분에 귀국 후 진융 연구를 필두로 대중문화 연구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2000년 홍석준 교수를 만나 에스노그라피와 학제적 공동 연구의 영역에 진입한 것은 내 공부의 또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교내 연구비와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두 차례의 현지 조사를 수행한 결과물이 홍콩과 홍콩인의 정체성(2006)이었다. 문학, 문화인류학, 역사학, 고고학 전공자가 홍콩이라는 하나의 지역을 대상으로 정체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각 전공의 고유한 이론과 접근 방법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학제적 공동 연구의 실마리를 발견한 것은 커다란 기쁨이었다. 홍 교수와의 공동 연구는 동아시아의 문화와 문화적 정체성(2009)으로 이어졌고, 이 책에서 동아시아에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상하이영화와 상하이인의 정체성 프로젝트에 옵저버로 참여해 큰 도움을 주었고 상하이영화와 상하이인의 정체성(2010)에도 필자로 참여했다.

 

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 2004년 하계수련회에서 기획하고 7월에 편집출판위원회를 꾸린 후 위원장을 맡아 200511월까지 약 17개월 동안 매월 한 차례씩 만나 목차와 필자를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 빛을 본 중국현대문학@문화시리즈 세 권(20062, 20081)은 학회 회원들의 전문적인 연구 결과들을 일반 독자들과 공유하려는 결과물이었다. 그 가운데 중국현대문학과의 만남1부 중국현대문학사의 큰 흐름. 2부 중국현대문학의 갈래, 3부 중국현대문학의 거장들로 나누어 32명의 필자가 참여했다. 원래 네 권으로 기획했던 시리즈의 핵심이랄 수 있는 중국 근현대 문화를 출간하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나는 지금까지 상하이 연구와 관련된 책 여섯 권의 출간을 주관했다. 상하이대학 당대중국문화연구센터의 왕샤오밍 교수와 공동으로 편집한 21세기 중국의 문화지도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문화연구(2009)를 필두로, 상하이영화와 상하이인의 정체성(2010)20세기 상하이영화: 역사와 해제(2010), 상하이학파 문화연구: 비판과 개입(2014)가까이 살피고 멀리 바라보기: 왕샤오밍 문화연구(2014), 그리고 韓國漢學中的上海文學硏究(2021)가 그 목록이다.

 

첫 번째 책은 문화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2000년부터 진융의 무협 소설, 홍콩인의 정체성 등의 연구를 진행하던 중 문화연구로 전환한 왕샤오밍 교수를 만나 가는 과정에서, 2005년 여름 중국의 문화연구 성과를 한국에 소개하자는 나의 제안으로 기획한 책이다. 당시 화둥사범대학 중문학부의 인적 네트워크와 상하이대학의 제도적 지원이라는 인프라를 확보한 왕샤오밍은 센터를 설립하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왕샤오밍이 9편을 추천했고, 내가 왕샤오밍과 다이진화의 글 각 1편을 보완하고 중국 문화연구에 대한 개괄적인 글 1편을 써서 출간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은 상하이영화와 상하이인의 정체성프로젝트의 결과물로, 전자는 연구 결과를 모은 논문집이고 후자는 상하이영화 288편의 데이터베이스 기록이다. 네 번째 책은 201112년 한국연구재단 해외방문연구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상하이대학에 방문학자로 머물면서 상하이의 문화연구 학자들과 직접 교류하던 중, 때마침 편집위원회에 합류하게 된 문화/과학을 통해 소개한 상하이 문화연구 관련 글들을 모은 것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 책은 왕샤오밍의 한국 제자들이 꾸준히 번역한 왕샤오밍의 글 가운데 중요한 것들을 추려 모은 것이다. 마지막 책은 상하이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왕광둥(王光東) 교수의 요청에 부응해 한국의 상하이문학 연구 성과를, ‘문학으로 읽는 상하이’, 문학 상하이에 초점을 모아 엮었다. 나는 상하이 에스노그라피라는 주제 의식으로 해상화 열전, 한밤중(子夜), 장한가를 분석했다.

 

20세기중국문학사 담론의 제기와 확산 과정을 보면서 중국근현대문학사 담론에 작용하는 권력을 인지했고 그것이 텍스트를 선택하고 지배하고 있음을 파악했다. 중국 근현대문학사 담론과 타자화(2013)배제(exclusion)’를 전제하는 미셸 푸코(Foucault, Michel)담론개념과 포스트주의(postism)의 합리적 핵심을 빌어 타자화(otherization)’를 주제어로 삼아 중국근현대문학사 담론의 관행을 파헤치고 새로운 문학사의 구성을 위해 제1부 이론적 접근, 2부 주제별 접근, 3부 쟁점들로 나누어 점검했다. 특히 제1부에서 담론과 타자화의 두 가지 사례를 20세기문학과 두 날개 문학근현대문학사 기점과 범위로 나누어 고찰했다. 전자는 신문학’, ‘셴다이문학’, ‘진셴다이(近現代)100년문학’, ‘20세기문학’, ‘셴당다이(現當代)문학’, ‘두 날개 문학등 계속 미끄러져 온 기표를 일단 근현대문학으로 고정하고, 5·4 이후 지속해서 논의되어온 근현대문학사에 관한 담론을 고찰하는 동시에 그 내부에 온존하고 있는 타자화의 정치학(politics of otherization)’을 규명했다. 후자는 새롭게 구성되고 있는 중국근현대문학사의 기점과 범위에 초점을 맞췄다. 기점 면에서 첸리췬 등의 20세기중국문학사가 1898년을 기점으로 제시했고 판보췬은 1892년으로 앞당겼으며 옌자옌은 1890년으로 설정하고 있다. 왕더웨이에 따르면 1851년 태평천국 시기로 앞당겨진다. 문학사 범위도 지속해서 팽창하고 있다. 삼분법 시기의 셴다이문학사는 좌익문학사였지만, 20세기중국문학사에서 우파문학을 복권시켰고 두 날개 문학사에서 통속문학을 복원시켰다. 21세기 들어 중국근현대문학사는 국경을 넘어 팽창하고 있다. ‘중국문학으로부터 중어문학(漢語文學/華語文學)’으로 그리고 중국인문학(華人文學)’으로 자기 변신하고 팽창하면서 재구성 단계에 들어섰다. 이 두 편은 중국 학술지에도 발표한 바 있다. 개혁개방 이후 근현대문학사 담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20세기 중국문학을 논함(황쯔핑 천핑위안 첸리췬)통속문학과 두 날개 문학(판보췬)을 부록으로 실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급변하는 추이를 따라가며 문학적으로 분석하려 노력했다. 좌익문학 운동을 주제로 쓴 박사학위논문을 마무리하고 목포대에 부임한 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 노력은 신시기소설을 통해 시대 상황을 읽는 방법으로 시작했고, 학제적 만남이 빈번해지면서 문학 너머를 넘겨다보게 되었다. 그 와중에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를 만난 것이 1996년 무렵으로, 인문대 동료 교수들과 문학이론 공부를 시작하며 자연스레 문화연구에 입문하게 되었다.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문화정체성과 문화정치(2017)는 그 후 20년간 문화연구와 중국연구를 결합한 공부의 결과물이다. 1부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비판적 사상과 문화연구, 2부 소수민족 정체성과 문화정치, 3부 도시화와 문화정체성, 4부 포스트사회주의 중국 인식과 문화 횡단으로 나누어 14(서장 포함)으로 구성했다. 2012년 편집위원회에 합류한 문화/과학의 강내희 교수심광현 교수와의 만남은 커다란 힘이 되었다. 이 만남은 맑스 코뮤날레 집행위원회 참여와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운영으로 지속되었고, 3년 넘게 지속한 강 교수 주도의 인지과학 세미나 참석으로 이어졌다.

 

문화연구의 발원지인 영국의 버밍엄학파는 리비스주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다. 리비스주의의 문화의 연구(study of culture)’에서 대상으로 삼은 것은 고급문화였고, 버밍엄학파의 문화연구에서는 고급문화 위주의 전통을 비판하면서 대중문화를 연구 시야에 넣었다. 새로운 단계의 문화연구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장벽을 타파하고 양성문화에 대한 학제적 융복합적 연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리비스주의의 문화의 연구로부터 버밍엄학파의 문화연구, 이제 다시 문화에 대한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of culture)’ 단계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분, ‘문화의 연구문화연구의 장벽을 타파하고,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아우르는 문화 개념을 새롭게 제출하면서 그것을 문화적으로연구하자는 것이다. 고급문화 중심의 리비스주의가 1단계였고, 이를 비판하고 대중문화 중심의 문화연구를 제창한 버밍엄학파가 2단계였다면,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구분하지 말고 양성문화를 발굴하고 악성문화를 지양하는 새로운 3단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제국주의와 봉건제를 비판하며 건국된 중화인민공화국은 개혁개방 이후 발생한 많은 문제점으로 인해 새로운 비판에 직면했다. ‘비판의 주체는 비판적 지식인기층 민중이다. 중국공산당이 제국주의와 봉건제를 타도하기 위해 혁명의 기초로 삼았던 기층 민중과 연대의 주축이었던 비판적 지식인이 언제부턴가 중국공산당을 비판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포스트사회주의 중국과 그 비판자들개혁개방 이후 중국 비판사상의 계보를 그리다(2021)에서는 비판적 지식인비판에 주목했다. ‘비판의 비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제국주의와 봉건제를 비판한 중국공산당, 그리고 중국공산당을 비판비판적 지식인’.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비판의 비판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제한적이나마 비판적 지식인의 사상 계보를 정리하고, 제국주의와 봉건제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비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비판적 지식인들의 비판,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했다. 이는 중국을 공정하게 인식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이 책에서는 세 단계의 비판을 고찰하기 위해 리쩌허우의 적전(積澱)론과 인류학 역사본체론, 첸리췬의 20세기 중국 지식인 정신사 연구와 민간 이단 사상 연구, 왕후이의 근현대성 역설과 루쉰 연구, 쑨거의 동아시아론, 원톄쥔의 백년의 급진비용전가론’, 추이즈위안의 자유사회주의론, 장이빙의 마르크스 텍스트 해석학과 역사현상학의 주요 논점을 요약하면서 그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시도했다.

 

이데올로기 지형이 자유로워진 오늘날의 한국에서 비판적 중국연구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쟁점과 과제가 놓여있지만, 그 가운데 근본적인 것은 모던 이후 세계를 지배해온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것과 그에 대한 반발로 제출된 중국중심주의를 경계하는 것이다. 레이 초우(Chow, Rey)비판적 중국연구가 직면한 두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하나는 중국의 외부, 즉 서양과 미국의 중국학자들에게 공통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내부, 즉 토착적 중국학자들이 공유하는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이다(초우, 2005). 오리엔탈리즘은 문화제국주의의 유산이고 내셔널리즘은 나르시시즘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결국 보편주의와 특수주의가 상호 강화하는 메커니즘을 구성하면서 지금껏 비판적 중국연구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중국 외부로는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고, 중국 내부로는 내셔널리즘과 내부 식민지를 극복하는 것, 바꿔 말하면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의 문제점을 파악해 문화제국주의의 맥락 안에서 나르시시즘적 가치생산의 문제를 규명하는 일이야말로 비판적 중국연구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일이다. 유럽중심주의와 중국중심주의가 심층에서 은밀하게 작동하고 있다면, 일반 대중이 쉽게 접하는 것은 유럽중심주의의 프리즘으로 왜곡된 중국관이다. 이는 끊임없이 중국위협론중국위험론을 부추겨 반중(反中)과 혐중(嫌中) 정서를 조장해왔다.

 

(중국의) 비판적 문화연구와 포스트식민 번역연구(2024)2017년 한국연구재단 우수연구학자 지원 사업의 결과물이지만, 집필하다 보니 지난 40년간 비판적 중국연구(critical Chinese studies)’로 나아가는 필자의 학문적 여정을 집성(集成)하게 됐다. 문학연구가 내 공부의 기반을 구성하고 있다면, 1990년대 시작한 문화연구와 그 연장선상의 도시문화 연구, 2010년대 후반에 시작한 사이노폰 연구(Sinophone studies), 그리고 문화연구와 사이노폰 연구 사이 어느 시점에 관심을 두게 된 포스트식민 번역연구(postcolonial translational studies)는 개인 차원에서 비판적 중국연구로 나아가는 여정의 중요한 지점들이다. 그리고 동아시아 담론, 홍콩과 상하이의 문화정체성 연구, 에스노그라피,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비판사상 등도 여정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그 외에도 비판적 중국연구의 여정을 뒷받침해준 수많은 공부가 존재한다. 마르크스주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식민주의, 포스트사회주의, 인지과학, 포스트휴먼, 적녹보라 패러다임 등등이 그 목록이다. 이 목록은 새로운 대륙’(루이 알튀세르)이라 일컫기에는 부족하지만 비판적 중국연구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필자가 만나 도움받은 영역들이다. 이 책에서는 비판적 중국연구를 위한 접근법으로 비판적 문화연구텍스트로 읽는 도시문화’, ‘포스트식민 번역연구사이노폰 연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비판적 문화연구에 대해서는 앞부분에서 설명했으므로 여기에서는 나머지 세 부분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텍스트로 읽는 도시문화부분에서는 문자 그대로 소설과 영화 텍스트를 통해 근현대 중국 문화, 구체적으로 도시문화를 읽으려는 시도이다. 이는 소설로 보는 현대 중국(1995)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이후에도 홍콩과 상하이 프로젝트를 통해 심화 확대했다. 도시문화문화연구와 긴밀한 관계가 있고, 상하이와 홍콩은 근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인 만큼 그에 관한 연구도 상당히 진척되었다. 이 부분에서는 상하이와 홍콩 그리고 타이완의 문화정체성 연구를 일별하고, ‘문학 상하이’, ‘영화 홍콩등의 개념을 참조하고 문화인류학의 에스노그라피의 방법론을 빌려와 소설과 영화 텍스트 분석에 적용해보았다. 특히 문학인류학과 에스노그라피는 문학 상하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흔히 허구라고 인식된 근현대소설 텍스트를 인류학적 텍스트로 설정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학자가 현지에 들어가 일정 기간 참여 관찰을 통해 조사하고 핵심 인물을 심층 인터뷰해서 에스노그라피를 기록하듯이, 작가 또한 현지조사와 참여 관찰 그리고 심층 인터뷰를 하는데, 이런 과정을 거친 작품을 에스노그라피로 설정해보자는 것이다. 전기를 생애사로, 소설가를 현지조사하는 인류학자로, 소설 텍스트를 에스노그라피로, 작중 인물을 정보제공자로 설정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텍스트와 작가를 에스노그라피와 인류학자로 볼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 관찰(participant observation)’의 자세를 취하는 관찰자 화자와 시점이라 할 수 있다.

 

번역에 대한 문제의식은 대학 4학년까지 소급된다. 당시 시선(詩選) 강독의 담당교수는 왕리(王力)고대한어(古代漢語)(1933)에서 시선 부분을 발췌해 교재로 삼아 강의를 진행했는데, 주로 학생들이 발표하고 그에 대해 담당교수가 교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작품 감상과 비평 그리고 문학번역(literary translation) 나아가 문화번역(cultural translation)에 대한 보완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생략했거나 건너뛰었다. 외국()학을 전공하면 반드시 부딪치게 마련인 번역에 대한 고민은 번역연구(translation studies)라는 학제적 연구를 만나면서 많이 해소되었다. 특히 포스트식민 번역연구는 번역이 단순한 언어번역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출발언어와 목적언어의 문화번역까지 아울러야 한다는 점과 함께 권력의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주목이 필요하다. ‘포스트식민 번역연구부분에서는 번역연구의 이론 검토와 사례 분석으로 나누어, 번역연구에 대한 역사적 고찰, 트랜스내셔널 문화횡단과 문화번역의 정치학, 중국의 한국문학 번역출판을 통해 본 문화번역과 문화횡단, 진융 소설 번역을 통해 본 한중 문화번역의 정치학, 루쉰전집완역과 리쩌허우 저작의 학술번역에 대한 비평 등을 고찰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 대륙 내의 문학을 한어(漢語)문학(Chinese literature)’이라 하고 대륙 밖의 중국어 문학을 화문(華文)문학(literature in Chinese)’이라 일컬었다. 화문문학이 문자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언어에 초점을 맞춰 화어(華語)문학이라 하고, 창작 주체에 초점을 맞춰 화인(華人)문학이라고도 한다. 한어문학은 대륙에서 다수자 문학이지만, 화문문학/화인문학은 현지(거주국)에서 소수자 문학이다. 스수메이(史書美. Shi, Shu-mei)는 다수자 문학으로서의 한어문학과 대립하는, 소수자 문학으로서의 사이노폰 문학’(Sinophone literature)을 차별화할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스수메이는 레이 초우의 뒤를 이어 중국적임비판과 디아스포라 반대에 초점을 맞췄다. 중국 문화는 한족을 포함한 56개 에스닉 문화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중국인은 대부분 한족과 동일시되고, 중국 문화는 대부분 한족 문화를 가리킨다. 이는 중국 내에서 소수자를 억압하는 한족(Han ethnic)중화 네이션(Chinese nation)중국(China state)’삼위일체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스수메이는 해외 이주 중국인과 중국 내 한족 이외의 소수 에스닉 중국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 전자는 디아스포라에 대한 새로운 성찰화인은 중국인인가?을 요구하며, 후자는 내부 식민지(internal colonialism)’의 문제의식을 추동한다. 스수메이는 다수자 문학으로서의 중국문학과 대립하는, 소수자 문학으로서의 사이노폰 문학을 차별화할 필요성을 주장하는 동시에, ‘사이노폰 문학화문문학의 차이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우리가 중국어(Chinese)라고 알았던 이민자들의 언어는 만다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각종 방언을 포함한 중국어파 언어(Sinitic language)’였다. 스수메이에 따르면, 디아스포라는 그 종점이 있다. 이민이 안돈(安頓)되면 현지화하기 시작한다. 디아스포라가 1세대 또는 2세대에 국한된 단기적 현상이라면, 사이노폰은 해외 이주를 장기 지속적 현상으로 고찰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스수메이는 역사로서의 디아스포라가치로서의 디아스포라개념을 변별한다. ‘역사로서의 디아스포라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디아스포라 현실을 과장하는 가치로서의 디아스포라는 조만간 종결해야 하는 이데올로기인 셈이다. ‘사이노폰 연구양날의 검과 같다. ‘사이노폰 연구의 주요 범주인 사이노폰 문학은 자신의 영역에서 기존의 중국문학을 배제한다. 그러나 사이노폰 담론의 주요 연구자들의 연구 베이스는 중국문학이다. 바꿔 말하면 중국문학 없이 사이노폰 문학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무엇보다 사이노폰 연구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중국연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독자성을 주장하는 스수메이도 학술적 베이스를 중국연구에 두고 있고 소속도 아시아언어문화학과이다. 중국연구에 뿌리를 둔 채 중국 바깥을 연구하는 이중적 성격, 나아가 사이노폰 연구학과가 신설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이노폰 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사이노폰 연구가 궁극적으로 중국연구에 귀속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책에서 사이노폰 연구를 다루는 것도 그런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중국적임의 호명에서 팽창적 국가주의비판은 가능하지만, ‘중국적임에 잠재된 중국 전통의 끈질긴 호출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중국을 단순한 국민국가(nation-state)’라 하지 않고 문명국가(civilization state)’라고 부르거나, 미국 문화를 샐러드 볼(salad bowl)로 표상하는 것에 반해 중국 문화를 용광로에 비유하는 것은 오래된 3천 년 이상의 지속된 문화 전통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가 용광로의 비유가 한족 중심의 중화문화임을 지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의 현실 지배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그동안 중문학계에서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수많은 텍스트를 연구 범주에 포함해야 한다. 스수메이의 분류에 따르면, 타이완의 문학 텍스트, 동남아와 미주 등 해외 화인의 문학 텍스트, 그리고 중국 대륙 내의 소수 에스닉의 문학 텍스트를 섭렵하고 분석 연구하는 거대한 과제가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