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이민과 타자화

ycsj 2011. 5. 2. 17:57

이민과 타자화
- 상하이 영화를 통해 본 상하이인의 정체성
Migration and Othernization: Identity of Shanghairen through Shanghai Film
林春城(Choon-sung Yim)

http://www.dbpia.co.kr/view/ar_view.asp?arid=770518

 

1. 중층 네트워크 도시 상하이
2. 이민도시 상하이와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상하이인
3. 라오상하이인의 형성 ― 닝보인과 쑤베이인의 경우
4. 문화적 개념으로서의 상하이인 ― 정체성의 지속과 변화
5. 이민과 타자화 ― 상하이인 정체성의 정치

 

 

1. 중층 네트워크 도시 상하이
오래 전 나는 라오상하이(老上海, old Shanghai)에 살았다. 그곳에 머물

렀던 모든 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아주 대단한 특권들’(very special
privileges)을 누렸다.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들을 거의 잊어버리고 있
었다. 동방의 파리, 상하이에서 불황은 결코 우리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
나 중국인으로 살기에는 끔찍한 시절이었다(It was a terrible time to be
Chinese). 하지만 아무 것도 우리를 귀찮게 하는 것은 없어 보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위의 인용문은 영화 ≪홍색 연인(紅色戀人, Time to Remember)≫의 내
레이터 닥터 페인(Payne, Todd Babcock 분)의 회고적 독백이다. 이어서
1936년 상하이, 푸둥(浦東) 방향에서 와이탄(外灘)의 조계지(International
Settlement and Concession)를 원경(遠景)으로 잡으면서 어느 술집(酒吧)
의 장면이 줌업(zoom-up)된다. 테이블 위에서 춤추는 중국 무희, 그녀를
받아 함께 어울리는 닥터 페인, 주위에 자유롭게 자리 잡은 동서의 남녀
들, 공공조계의 영국인 경찰 클라크(Clarke, Robert Machray 분), 그리
고 중국 국민당 특무요원 하오밍(皓明, 陶澤如 분) 등이 등장한다. 영화
의 주인공 ‘홍색 연인’ 진(靳, 張國榮 분)과 추추(秋秋, 梅婷 분)가 아직
등장하지 않은 시점이지만 우리는 페인의 독백과 이어지는 장면에서
1930년대 상하이를 해석(interpretation)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우선 흥미를 끄는 것은, 중국계 감독(葉纓: Yip Ying)이 중국에 관한
영화를 상하이에서 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인 내레이터를 선택했다
는 점이다. 전지구적 맥락에서 근현대화를 선도하면서 기타 지역을 타자
화(othernization) 시켰던 서양1), 바로 그 서양인의 시점에서 사건을 기
술하고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대사의 80% 이상이 영어로 진행되고 있다. 요컨대 이 영화에서 상하이

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서양인이고 서양언어다. 일반 서양인에 비해 양
심적 지식인의 풍모를 가진 페인이 ‘아주 대단한 특권들’이라고 표현한
부분과 맥락이 닿아있다. 그리고 페인은 ‘중국인으로 살기에는 끔찍한
시절’이었다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관객의 신뢰를 확보하고 있다. 이처럼
조계지 상하이는 서양의 지배력이 강력하게 관철되고 있는 곳이었다.
‘특권을 가진 서양인’과 ‘끔찍한 삶을 사는 중국인’이 공존하고 있는
도시 상하이. 그 내면에는 영국인 경찰 클라크와 국민당 특무 하오밍의
갈등과 연계가 있고, 공산혁명가 진 및 추추와 페인의 유대가 있다. 또
변절자와 혁명가의 관계가 있으며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그 위에 중첩
되기도 한다. 그리고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숭고한 사랑
이야기도 있고 사랑하는 여인의 아이를 수양딸로 키우는 순애보도 있다.
이렇듯 1930년대 상하이는 이미 단일한 정체성을 거부하고 ‘중층적 네
트워크’ 속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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