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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왕샤오밍: 문과 창을 열 때(완료)

ycsj 2011. 2. 14. 11:39

 ▶ 왕샤오밍: 문과 창을 열 때가 되었다 

 ▶ 王晓明 是推开门窗的时候了

 ▶ http://www.cul-studies.com/Article/contribute/201102/7739.html  (2011-2-11)

 ▶ 《当代作家评论》2011年1期

 ▶ 키워드: 문학과 사회의 관계, 모옌과 왕안이, 한한과 궈징밍, 글쓰기 방식의 변화, 문학성, 현실에 반격

 ▶ 요약 

 

문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색

현재 중국은 어떤 사회인가?

지금 중국의 문학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이 어렵다.

 

1.

20년 전에 비해 오늘날 독서 인구는 늘었다 할 수 있고, 문학류 도서의 출판량도 증가했으며 상하이의 대학에 중문학부는 10년 전에는 4곳이었는데 지금은 7곳으로 늘었다. 그러나 20년 전의 문학―모옌과 왕안이로 대표되는 문학―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다른 문학과 작가―한한과 궈징밍―가 새로 출현했다. 이들의 독자가 모옌의 독자를 초월했고 그 잡지―[최소설]―의 판매량도 [수확]을 초월했다. 20년 전과 비교해보면 중국 대륙의 문학세계가 완전히 딴판이 되었다.

이 새로운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순문학과 통속문학으로 나누고 이를 다원화 국면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모옌과 궈징밍의 큰 구별이 모호해진다. 과연 ‘누가 작가인가?’ 모옌은 분명 소설의 주재자이다. 그가 없다면 이런 소설도 없다. 궈징밍의 소설은 다르다. 그는 복합체다. 작가이면서 브로커이고 판매상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의 내용과 형식은 작품의 마케팅에서 비롯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궈징밍 식 문학의 진정한 작가는 점차 방대해지는 중국 특색의 문화산업이다.

문학과 현실 질서의 관계의 차별. 이전의 (公認) 문학은 다정(多情), 선감(善感), 반역을 특징으로 하고 문학청년과 분청(憤靑)은 교환 가능한 개념.

궈징밍 식의 문학은 겉으로 보기에 청춘과 환상 위주이지만, 사람을 끌어들이는 방식은 대단히 노련하고 실제적인 문화산업의 방식이다.

 

2.

문학세계의 구성물이 변함에 따라 ‘문학이 현신(现身)하는 땅’(장르를 가리키는 듯-요약자)도 자연히 과거와 크게 다르다. 모옌과 왕안이 식의 문학은 소설, 시, 산문, 드라마 그리고 영화와 TV드라마의 각본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연속극, 상업광고, 오락뉴스보도, 여행안내, 인터넷게임, 문자메시지, 블로그 등의 인터넷공간의 도처에 존재하는 문학은 모옌과 왕안이 이외의 문학이다.

대기업의 정기간행물에 산문, 시, 단편소설 등이 상당한 편폭으로 실린다. 이들은 그룹 회장의 연설과 직원들의 각오 그리고 (기업)광고 사이에 교묘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는 (문학) 작품과 ‘기업문화’ 내지 ‘상업 광고’의 다면적 상호작용이 아닌가? [우리 사단장과 우리 사단(我的团长我的团)]과 같은 장편 연속극에서 문학적 맛이 충분한 대화도 문학이 연속극에 사용된 예라 할 수 있다.

이들 ‘사용’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그 규모가 계속 확대되고 사용물(즉 문학)을 심각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열 살짜리 도시소년은 대부분 인터넷게임을 즐기는데, 그들이 컴퓨터에서 일어나 소설 잡지를 들고 뒤적일 때, 게임을 할 때 양성된 감응과 이해 습관이 그들의 독서 체험에 영향을 줄 것이 틀림없다. 그 가운데 누군가가 글을 쓴다면 인터넷게임이 그에게 가르친 리듬감, 상상 방식과 구성 능력이 은연중에 감화시켜 무의식 층위에서 그의 문학 구상에 개입할 것이다. 오늘날 신인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인터넷게임의 영향이 이미 드러나기 시작했다. 10-20년 후 그 영향이 얼마나 커질지 헤아리기 어렵지 않다.

인터넷게임은 하나의 예일 뿐, 비슷한 일들이 매우 많다. 문학적 활동과 그 응용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범위가 확대될수록 금후 문학적 골격과 면모는 이들 새로운 영역의 지배역량에 의해 더 많이 빚어질 것이다. 비평가, 문학교사 심지어 작가 자신도 대개 주변으로 밀려날 것이고 출판상, 광고상, 인터넷게임 개발상, 기타 형형색색의 자본가와 상업 디렉터들이 문학무대의 중심을 차지할 것이다. 문학생산 메커니즘의 변화: 창작, 작가, 문학 장르, 문학청년, 심미, 독자와 문학작품의 관계 등등이 하나씩 바뀌고 있고 그 정도가 더 커질 것이다.

‘문학성’은 과거에 줄곧 문학이 현실에 반항하는 무기라 간주되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현실’이 그것을 쥐고는 더욱 기민하게 휘두르고 있다!

이런 방향에서 보면, 머지않아 오늘의 모옌과 왕안이의 문학은 사회와 인생의 주변위치조차도 지키지 못하고 박물관으로 직행하고 이런 문학의 문학성에 주목하는 것도 소수 대학의 연구실에 갇힐 것이다. 박물관과 연구실 문 밖에는 새로운 주류문학이 하늘을 덮을 것이다. 그것은 정치, 경제의 주류에 긴밀하게 부응하여 그들과 이익을 균점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이 반드시 문학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

물론 이는 현실의 한 방향일 뿐이다. 그리고 현실은 한 방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불길하게 말한 암담한 상상을 받아들일 수 없을수록 그와 반대 방향으로 결연하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근)현대 사회의 문학이 주변화될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아예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마도 미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문학이 점차 쇠락할 수 있지만, 중국과 같은 곳에서 문학은 필연코 중요한 역사적 역할을 할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래야 한다.

사실 오늘날 문학세계에 청신한 기상이 끊어지지 않았다. 잡지의 경우, [최소설(最小说)]이 매우 시끌법석해 [수확]도 일부를 점거당했는데, 모퉁이(斜角)에서 [독창단(独唱团)]이 나오자 국면이 전환되었다. 그러므로 문학과 사회의 관계는 목전에 여러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가는 것은 아니다.

쉽지 않지만 우리는 서둘러 일을 해야 한다. 1980년대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문학에 감응(感應)하고 그것을 이해하는 사로(思路)는 대부분 쓸 수 없으므로 새로운 사로를 개발해야 한다. 그 첫 걸음은 책꽂이에서 책을 뒤적일 것이 아니라, 문과 창을 열고 현실을 직면하는 것이다. 오늘날 중국의 문학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어떤 새로운 역량들이 문학의 창작과 생산 그리고 전파에 깊이 개입했는가? 새로운 주류문학이 형성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것인지? 관제기구와 문화산업의 강력한 작용 아래 모종의 새로운 ‘문학성’이 문학세계를 뒤덮고 문학청년을 흡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마디로, 오늘 중국의 문학생산 메커니즘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는가? 이 문학적 생산 메커니즘은 전체 사회의 지배적 문화―물론 다른 지배적 역량을 잊어서는 안 된다―의 생산 메커니즘과 어떤 새로운 상호작용을 형성하고 있는가?

우리가 이들 문제에 야무지게 대답할 수 있을 때가 바로 창조성이 풍부한 문학 창작과 비평으로 강력하게 그리고 팽팽하게 현실에 반격할 수 있을 때이다.

2010년8월 상하이

 

 ▶ 원문파일 첨부 

 

첨부파일 WangXiaoming2011021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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