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중국 종군기자의 한국전쟁 보고

ycsj 2010. 6. 11. 22:10

 

 

 

중국 종군기자의 한국전쟁 보고

---?압록강은 말한다?---

1.

그 동안 한국전쟁에 대한 사회주의권의 평가는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쑨여우졔의 ?압록강은 말한다?는 한국전쟁에 참가한 중국 종군기자의 육성 보고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중국에서 출간된 한국전쟁 관계 자료의 수량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1988년에 출간된 ?항미원조사(抗美援朝史)? 등의 공식적인 전사 외에도 범박한 의미에서 문학 범주에 속하는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이 작품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개혁개방 이전에 발표된 ?누가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인가?, ?삼천리 강산?, ?동방?, ?어제의 전쟁? 등을 대표로 하는 장편소설류로, 대부분 애국주의와 영웅주의의 기조 위에서 전쟁 영웅들을 찬양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지만, 혁명적 로맨티시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단조로움을 가지고 있다. 다른 한 가지는 1980년대 말이래 발표된 보고문학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과거에 알려지지 않았던 기밀과 내막을 처참하고 비극적인 줄거리로 폭로함으로써 독자들의 커다란 호응을 받았지만, 그 기밀과 내막의 진실성 여부는 확실치 않다. ?마오안잉의 죽음?과 ?지원군 포로의 기록? 그리고 예위멍(葉雨蒙)의 ?검은 눈(黑雪)?과 ?한강의 피(漢江血)? 등이 대표적 작품이다. 이 외에도 중국 지원군 지휘관이었던 펑더화이(彭德懷), 양더즈(楊得志), 홍쉐즈(洪學智) 등의 회고록이 있다.

중국의 공식 전사와 이들 작품을 읽어보면, 중국이 한국전쟁을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지원하며 국가를 보위하는 전쟁’이라고 부르며, 참전 장병들의 의식과 생활에서 애국주의와 영웅주의, 심지어 휴머니즘 정신을 발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한국의 일반 독자에게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한국전쟁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1945년 해방 이후 5년 만에 일어난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분단 체제를 고착시켰을 뿐만 아니라 동북아 냉전 체제를 본격적으로 출범시킨 사건이었다. 그것은 초기에 남한과 북한의 충돌이라는 내전의 성격을 띠었지만, 곧이어 미군의 개입으로 미국과 북한의 전쟁으로 전변되었고, 중국의 참전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체제 대립이라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전쟁은 사상자(실종자 포함)만 해도 635만 여명이라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1천만 이산가족이라는 후유증을 남김으로써 한국 근현대사의 커다란 획을 그었다.

그 동안 우리는 한국전쟁을 6․25사변이라 불렀고, 소련의 지령을 받은 북괴가 전쟁 의사가 없었던 남한을 무력 침공함에 따라 평화와 자유의 수호신을 자처하는 미국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남한 정부와 국민을 구출하기 위해 유엔군을 이끌고 달려왔다고 배워 왔다. 그러나 국내외의 전문가들이 모두 이 전면 남침설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공식 입장인 전면 북침설은 차치하더라도, 미국 내에서조차 ‘남측이 전쟁을 유도하기 위해 제한적으로 북을 공격했을 가능성’(브루스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을 배제하지 않고 있고(제한 북침설), 또 북한이 서울 점령을 목표로 공격했다는 제한 남침설도 제기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전쟁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러한 와중에 80년대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한국의 소장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들은 한국전쟁에 대해서 어느 한쪽의 주장에 경도되지 않고 종합적이면서 객관적인 평가를 시도하였다. 그 결과 전쟁 직전의 한반도 정세를 “남한 외부에서는 (미국, 일본, 타이완 등) 자유 진영의 롤백(roll-back)주의자들이 전쟁의 발발을 고대하고 있고 소련은 북한의 무력 강화를 도와주는 가운데, 남한 정권은 내부 위기의 돌파구를 찾고 있었고 북한은 고도의 긴장 속에서 무력 강화와 전투 계획 작성에 치중하고 있었던 상황”(?한국현대사 2?, 풀빛, 37쪽)이라고 분석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주장에 비해 설득력이 있다.

2.

?압록강은 말한다?는 한국전쟁 당시 중국측 최전방 취재를 담당했던 ?승리보?의 종군기자가 전쟁 당시의 비망록에 기초하여 전쟁이 끝난 후 약 40여 년에 걸친 자료 수집과 참전 장병 인터뷰를 통해 완성한 작품이다. 작가는 전자를 통해 구체성과 핍진성(逼眞性)을 확보한 동시에 후자를 통하여 총체성과 객관성을 겨냥하였다.

작가는 ‘역사를 존중하는 증인’의 입장에서 1950년 10월 1일 이동 명령을 받은 후부터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지루한 휴전 협상이 진행되고 있던 1952년 10월 27일까지 제27군단과 생사고락(生死苦樂)을 같이 하면서 부대원들의 전투와 생활을 기록하였다. 비록 중국 지원군에 속한 종군기자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그들의 승리와 용감함, 숭고함만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패와 비겁함, 졸렬함까지도 진솔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종군기자라면 의례 아군의 승리를 대서특필함으로써 전방의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후방의 국민들에게 안도감을 주는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압록강은 말한다?에서는 중국 지원군의 탈영, 자해, 풍기 문란 등의 부정적인 측면도 빠뜨리지 않음으로써 그 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의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종군기자의 기록에 걸맞게 이 책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하고 있다. 순조로운 진군을 위해 대포를 어깨로 떠받쳐 발사하게 함으로써 반탄력에 의해 전사한 포병 부대 분대장 쿵칭싼, 탱크 3대를 수류탄으로 폭파시킨 부분대장 이에융안 등의 형상은 전사에 기록되지 않은 무명용사들을 생생하게 복원시키고 있다. 하급 단위 사병들의 이러한 분투 정신이야말로 현대화된 장비로 무장된 미군에게 대항할 수 있는 원천이었던 셈이다.

지원군의 최대의 적은 미군의 공습이었다. 전쟁 기간 중 한반도 북반의 대부분을 쑥밭으로 만들었던 폭격으로 인해 중국 지원군은 작전은 물론이고 수송에도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다. 애초 공군과 보급 물자를 지원하기로 했던 소련은 막상 전쟁이 본격화되자 미국과의 충돌을 기피하여 뒷짐을 지고 있었다. 장비와 기술이 월등한 미국의 군사력에 대항하여 대의명분과 드높은 사기를 가지고 치른 전쟁이었기에, 중국 지원군은 열악한 객관적 조건을 정신력으로 극복한다는 마오이즘의 주의주의(voluntarism)적 성격을 전형적으로 드러냈다 할 수 있다. 우리가 ‘인해전술’이라고 일컬었던 중국 지원군의 무모함의 근저에는 바로 혁명전쟁을 치르면서 단련된 자발적 희생정신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오쩌둥은 한국전쟁을 ‘미국군의 강철에 대한 중국군의 기개의 싸움’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미군의 제공권에 압도당한 중국 지원군은 야간 전투와 근접전의 전술로 대항하였지만 혹심한 추위와 식량난은 또 다른 심각한 위협이었다. 혹심한 추위는 동상을 유발시킴으로써 전력의 손실을 가져다주었고 해동 이후에는 질병에 시달렸다. 매일 한 끼니로 버티는 식량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50년 10월 25일부터 11월 6일까지의 1차 공세에서 유엔군을 청천강 이남으로 구축하였고, 11월 27일부터 12월 25일까지의 2차 공세에서 유엔군에게 치명적 타격을 입힘으로써 전세를 역전시켜 유엔군을 전면 후퇴시켰던 중국 지원군은 이듬해 1월 4일 서울을 함락시키고 37도선까지 육박했음에도 불구하고, 1월 이후 공격에서 방어로 전환하였다. 이 전환의 가장 큰 원인은 식량 수송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중국 지원군은 북한 주민에게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않았던 것으로 이 책은 기록하고 있다. 오히려 북한 주민들은 그들에게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들을 돕고 있다. 중국 해방군이 혁명전쟁 때부터 3대기율과 8항주의(?압록강은 말한다?, 74쪽 참조)의 엄격한 군기를 확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독자라면 그들이 한국전쟁에서도 그 미덕을 여전히 발휘하였을 것이고 이런 그들에게 북한 주민들이 진심으로 대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3.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역사와 있을 수 있는 삶을 묘사하는 문학이 결합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역사소설이 후자에 중점을 둔 장르라면 보고문학(기실문학, 르뽀문학)은 전자에 역점을 두고 있다. 역사소설이 문학의 속성의 하나인 상상력의 운용을 허용한다면 보고문학은 과도한 상상력의 발휘에 제동을 건다. 그러므로 보고문학 작품인 ?압록강은 말한다?에 기록된 내용은 대부분 실제 있었던 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들의 수용 태도이다. 20세기를 지배했던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종언을 고한 것으로 보이는 세기말에 민족의 번영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적과의 동침’도 불사해야 하겠지만, 과거에 대한 정당한 평가 없는 새로운 관계는 사상누각이기 쉽다. 우리는 전쟁의 당사자이자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후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전쟁에 대한 정서적 잔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이성적으로는 한국전쟁에 대한 객관적이고 총체적인 평가를 기대하고 있지만, 그런 분석이 도출된다 하더라도 그 결과에 승복할지는 의문이다. 특히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자신이 겪은 고난과 혈육을 잃은 아픔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인식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마침 옌타이를 방문하게 되어 작가를 직접 만날 기회를 가졌고 종군 당시의 상황에 대한 열정적인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들었다. 고희를 넘긴 쑨여우졔 선생은 조만간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 했다. 아직도 한국전쟁 당시의 참상과 비극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가 한국의 변모된 모습을 보고 무엇을 느낄지 궁금하다.

(1996.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