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영화와 탈식민 문화 읽기

ycsj 2009. 6. 24. 22:42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영화와 탈식민 문화 읽기

 

 

1976년 문화대혁명(이하 문혁)이 종결되고 2년여의 과도기를 거쳐 1978년 12월 ‘사회주의 현대화’를 구호로 내세운 덩샤오핑(鄧小平; Deng, Xiao-ping)의 개혁`개방이 시작되었다. 이후 30년 전후의 시간을 개괄하는 데 ‘포스트사회주의(post-socialism)’는 유용한 개념이다. 마오쩌둥(毛澤東; Mao, Ze-dong)의 ‘중국적 사회주의’의 극단인 문혁은 그 극복을 전제한 덩샤오핑의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 시기에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했다.이 시기는 흔히 '개혁`개방시기'라 불렸고 그 주요한 구호는 '사회주의 셴다이화(現代化)'였다. 문화적으로는 1976년 상흔(傷痕)소설의 등장부터 '신시기(新時期)'라 부르기도 한다.

 

베이징대학 중문학부(中文系)에 재직하면서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를 수행하고 있는 다이진화(戴錦華; Dai, Jin-hua) 교수가 자주 쓰는 표현 중의 하나는 ‘탈주하다 그물에 걸림(逃脫中的落網)’이다. 시시포스(Sisyphus)를 연상시키는 이 말은 ‘곤경으로부터 탈출했지만 더 큰 그물에 걸린 격’인 중국의 사회`문화적 콘텍스트를 비유하고 있다. 1980년대의 ‘큰 그물’이, 문혁으로부터 탈출했지만 그 ‘문화심리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국가권력이었다면, 1990년대의 ‘큰 그물’은 전지구적 자본에 포섭된 시장이다.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은 탈식민 문화(post-colonial culture)의 현장이기도 한데, ‘안개 속 풍경’과 ‘거울의 성’은 그에 대한 상징적 레토릭이다.

 

『무중풍경』은 3부 1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은 독립된 글이면서 상호 연계를 가지고 있다. 목차는 아래와 같다.([] 부분은 글쓴이의 요약임)

 

제1부기울어진 탑에서 바라보다

1.[4세대감독론] 기울어진 탑(斜塔): 4세대를 읽다

2.[5세대감독론] 끊어진 다리: 아들 세대의 예술

3.[제3세계 비평] 타자(他者)와 만나다: 제3세계 비평 독서기록

4.[여성영화론] 성별과 서사: 당대(當代) 중국 영화 속의 여성

5.[여성영화 작품론] 『인간·귀신·사랑』: 한 여인의 곤경

6.[도시영화론] 고요한 소란: 도시의 표상 아래에서

7.[도시영화 작품론]『마음의 향기(心香)』: 의의, 무대 그리고 서사

 

제2부막이 내리고 막이 열리다

8.[국제영화제와 5세대] 열곡: 포스트89 예술영화의 휘황과 몰락

9.[5세대감독 재론] 역사의 아들: ‘5세대’를 다시 읽다

10.[5세대감독 작품론]『패왕별희』: 플랫이 된 역사와 거울 속의 여인

11.[5세대감독 작품론]『붉은 가마』: 파괴된 의식과 문화적 양난(兩難)

12.[5세대감독 작품론]『붉은 폭죽, 푸른 폭죽』: 유형(類型)·고택(古宅)과 여인

 

제3부거울성의 한 귀퉁이

13.[중국영화 1993-4] 장마철: 1993-1994년의 중국 영화와 문화

14.[1990년대 작품론]『얼모』: 현대 우언의 공간

15.[6세대감독론] 안개 속 풍경: ‘6세대’를 처음 읽다

16.[중국영화 1995] 카니발의 꽃종이(종이서랍?): 1995(년) 중국 영화 비망록

17.[중국영화 1998] 빙해, 배를 집어삼키다(배를 집어삼킨 어름바다): 중국영화 1998년

 

이렇듯 다이진화는 1978-98년의 중국영화를 해석하면서 세대(generation)(*)`성별(gender)`도시(urban)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을 읽노라면 마치 ‘줌업(zoom-up)’하는 카메라가 느껴진다. 1978년 이후 중국의 사회`문화적 배경이 ‘안개 속 풍경’처럼 그려지다가, 중국영화라는 파노라마에서 5세대로 좁혀지고 다시 장이머우(張藝謀; Zhang, Yi-mou)와 천카이거(陳凱歌; Chen, Kai-ge)에 초점을 맞추다가 마지막에는 화면 가득 장이머우로 채워지는 느낌이 그것이다. 장이머우는 다이진화가 감독한 작품인 이 책의 주연인 셈이다.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사회·문화적 콘텍스트와 중국영화라는 텍스트 사이를 오가는 다이 진화의 분석대상은 4세대부터 6세대까지다. 그 중심에 놓인 5세대는 “1982년 중국영화사에 나타난 최초의 청년촬영제작팀과 1983년 말과 1984년에 조용히 작품을 발표하여 흥미와 경이를 불러일으킨 청년창작집단”을 가리킨다. 이들의 의미는 영화사적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문혁이라는 ‘문화적 재앙의 유복자’로서, 그들은 1980년대의 역사·문화적 ‘반성[反思]’ 운동에 참여했고 영화를 통해 당대 중국문화에 전면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중국 역사와 담론의 주체가 되었다. 그리고 그 핵심에 장이머우와 천카이거가 있다.

 

저자의 표현대로 장이머우는 중국영화계의 ‘복장(福將)’임에 틀림없다. 이는 수많은 국제영화제 수상경력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핵심은 그가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영화계와 문화계의 흐름을 잘 타 왔다는 데 있다. 초기의 자유로운 실험, 국내외적으로 적절한 시점에서의 국제영화제 수상, 국가권력의 주선율과 시장화의 이중압박에서 해외자본의 투자유치 그리고 최근의 중국식 블록버스터 제작, 2008년 베이징올림픽 총감독 등의 도정은 그를 단순한 영화감독으로 자리매김하기 어렵게 만든다. 다이진화의 장이머우론의 핵심은 이렇다. 장이머우는 ‘탈식민 문화의 잔혹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인지했고 세계무대로 나가기 위해서는 ‘동방적 경관(oriental spectacle)’이 필요함을 인식하여 ‘이중적 정체성(dual identity)’ 전략을 활용해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교묘하게 동방과 서방, 중국과 세계를 봉합했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장이머우의 성공이 가져온 결과는 세계로 향하는 창이라기보다는 그 시야를 가리는 거울이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대국으로 굴기(崛起)하는 중국이 아니라 서양이라는 타자에 의해 구성된 동방의 이미지였고, 서방 남성관객이 요구하는 욕망의 시선에 영합한 동방의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결코 중국의 본토문화일 수 없는, 상상되고 발명된 중국의 이미지인 것이다. 저자가 명명한 ‘내재적 유배’는 ‘셀프 오리엔탈리즘(self-Orientalism)’의 다른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 천카이거는 중국영화의 또 다른 거울이다. 그가 초기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대범함과 명석함은 <아이들의 왕(孩子王)>이 1987년 깐느영화제에서 고배를 든 후 사라졌고(같은 해 장이머우는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거머쥐었다), 천신만고 끝에 1992년 <패왕별희>로 깐느영화제를 석권했지만 그것은 추락으로 얻은 구원이자 굴복과 맞바꾼 면류관이었다. 천카이거가 고심해서 재현한 중국본토문화는 탈식민문화라는 콘텍스트 안에 내재화(internalization)된 서양문화의 시점(視點)과 절묘하게 결합됨으로써 소실되어버렸다. <황토지>에서 함께 출발한 장이머우와 천카이거가, 이후 각자의 방식으로 전지구화의 지표인 ‘블록버스터’로 귀결된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들은 역사와 문화의 ‘큰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성실하거나 그다지 성실하지 않은 역사의 아들”이었던 셈이다.

 

페미니즘은 다이진화의의 주요 연구영역이다. 여성해방은 사회주의 중국의 커다란 성과의 하나로 일컬어지지만, 다이진화는 ‘당다이(當代)’ 중국 영화 속의 여성을 다루는 장에서, 1949년부터 1979년까지 여성해방 담론의 핵심을 무성화(無性化)로 파악한다. 중국 혁명은 여성이라는 특수성에 기초하여 양성 평등을 이뤄낸 것이 아니라 여성을 버림으로써, 다시 말해 여성을 남성화함으로써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적`담론적 권력을 향유케 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중국에는 여성은 없고 남성만 존재했던 셈이다. 이는 또 다른 방식의 억압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여성해방을 성취했다고 평가받았던 사회주의 중국에서, 여성은 다시 할 말을 잃고 실어증을 강박 당했으며, 여전히 국가와 남성이 주도하는 혼인 방식이 주는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이 교수의 커다란 미덕은 끊임없이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오간다는 점이다. 그녀는 섬세한 왕복운동 속에서 누구도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아내고 아무도 말하지 못한 것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5세대, 특히 장이머우의 문화적 의미는 다이 교수의 해석을 통해 풍부하고 두터워졌다. 아쉬운 점은, 문학 작품의 영화화에서 영화는 분명 문학 원전에 빚진 부분이 있을 터인데, 그것을 변별해 논하지 않고 모두 감독의 몫으로 평가한 것이다.

 

난해하기로 소문난 다이 교수의 글을 친절한 역주와 함께 ‘그대로’ 옮기려 노력한 것은 이 번역본의 미덕이다. 다만 의미가 애매한 부분이 몇 군데 눈에 띈다. 예를 들어, 번역본에서 사용된 ‘동일시’라는 용어는 ‘認同’의 역어인데, 동사적 용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체성’으로 번역해야 했다.

 

(*) 슈테판 크라머(2000), [중국영화사], 이산. 제1세대: 1920년대까지 활동, 미국의 영향, 상업영화 옹호자들, 초기의 선구자들. 제2세대: 예술성을 지향하는 자유주의 성향이나 좌익 성향으로 발전/ 할리우드의 코미디나 멜로드라마의 영향을 받아 오락성을 추구. 제3세대: 1940년대 이후 공산주의 영화를 만든 영화제작자들. 그들의 공산주의 영화는 1949년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정치선전과 인민교육의 도구이자 통치수단으로 이용. 제4세대: 정치적 혼란기인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에 학업을 수료. 그들은 대개 1970년대 말 급진적 정치상황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들의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제5세대: 국제적 인정을 받은 제5세대 감독들은 1982년 다시 문을 연 베이징 영화학교(Beijing Film Academy, 北京電影學院)의 첫 졸업생들. 제6세대: 독립적인 예술영화를 제작하는 젊은 전위주의자들. 국가기관에 종속되지 않고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