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중국의 비판적 문화연구

ycsj 2009. 6. 24. 22:19

 

중국의 비판적 문화연구



  [21세기 중국의 문화지도--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문화연구]-책머리에




  2001년 11월 창설된 상하이대학 ‘당다이(當代)문화연구센터’(Centre for Contemporary Cultural Sutdies)를 인지하고 처음 방문한 것은 2003년 2월이었다. 목포대학에 부임한 이래 꾸준히 진행해온 서양이론서 독해를 통해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2000년부터 진융(金庸)의 무협소설, 홍콩인의 정체성 등의 연구를 진행하던 상황에서, 당다이문화연구센터 소장 왕샤오밍 선생과 공동 연구를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화둥(華東)사범대학 중문학부 교수였던 왕 선생은 이 센터와 문화연구학과 개설을 위해 상하이대학으로 옮긴 상태였다. 그 이후 매년 한두 차례 만나고 수시로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러던 중 2004년도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상하이 영화와 상하이인의 정체성’ 과제를 수행하면서 긴밀한 관계로 발전했고, 2005년 여름 상하이에서 중국의 ‘문화연구’를 한국에 소개하자는 나의 제안으로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 상하이 연구자들의 글 9편을 왕샤오밍 선생이 뽑았고, 여기에 베이징을 대표하는 문화연구자인 다이진화 선생의 글 1편과 왕샤오밍 선생의 글 2편을 내가 보완했으며, 여기에 12편의 글에서 직접 다루지 못한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문화 경관을 개괄한 글 1편을 더했다. 2006년 10월 목포대학 아시아문화연구소와 상하이대학 당다이문화연구센터가 공동 주관한 학술심포지엄에서 원고를 넘겨받은 지 2년이 지나서야 결실을 맺게 되었다.
  중국의 ‘문화연구’는 199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사회주의 30년 동안 금제되었던 서양의 이론들이 ‘셴다이화(現代化)’의 이름으로 개방되면서 물밀 듯 들어왔고, 중국의 지식인들은 포스트주의(postism 또는 postology, 중국어로는 ‘後學’이라 함)와 함께 ‘문화연구’ 방법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서양의 이론들은 개혁`개방 초기 중국 지식인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지만 중국의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쳐서는 ‘회색 이론’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연구방법론으로서의 이론만이 유효할 수 있었고 ‘문화연구’는 바로 비판적이고 유효한 학제간 연구방법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문화연구’는 중화권 학자들에게 낯선 분야가 아니다. 1997년 회귀를 전후한 홍콩을 대상으로 전 지구적 관심이 집중된 적이 있었고 타이완의 복잡한 정체성 문제도 문화연구의 중요한 주제였다. 다만 홍콩과 타이완의 문화연구 학자들은 유럽보다는 미국의 문화연구에 경도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홍콩이나 타이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대학에서 비교문학이나 문화연구를 전공한 후 귀국해서 홍콩이나 타이완의 대학에 자리를 잡고 중문학, 중미 비교문학, 문화연구 등에 매진하곤 한다. 물론 레이 초우(Rey Chow)처럼 미국 대학에 머물면서 미국의 주류 담론에 편입되기도 한다. 이들은 중국어와 영어, 그리고 광둥어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학제간`초국적 연구를 수행하는 데 장점을 가지고 있다.
  홍콩과 타이완의 문화연구와는 달리, 대륙의 문화연구 학자들은 대부분 토종이다. 한국의 문화연구 학자들이 대부분 영문학 또는 미디어 전공에서 넘어간 것과는 달리, 대륙에서는 중문학 전공자들이 문화연구 쪽으로 영역을 확장한 경우가 많다. 이 책의 공동 편저자인 왕샤오밍 선생과 필자인 다이진화 선생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중국의 일반 중문학자와 달리 서양 이론에 개방적이면서도 그에 대한 비판적 수용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소수자(minority)에게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연구 경향을 ‘비판적 문화연구’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왕샤오밍 선생은 만날 때마다 한국 사회에 관한 질문을 빠뜨리지 않는다. 작년 6월 푸단대학 국제학술대회에서 만났을 때도 한국의 ‘촛불 시위’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이들의 연구 성과를 통해 비판적 문화연구가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을 보는 유효한 렌즈이자 21세기 중국의 문화지도를 읽는 나침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강단의 이론적 논설과는 거리가 있다. 필자들이 각자의 현장에서 나름대로 관찰을 통해 얻은 심득을 글로 옮긴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문화연구가 빠진 이론적 유희의 늪에서 성큼 벗어나 있다. 또한 최근 중국의 어떤 징후, 즉 개혁`개방 직후 서양 이론에 경도되었다가 그로부터 빠져나오는 동시에 전통의 창조적 계승에 몰두하고 있는 징후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중국 자체에 매몰되어 있는 수많은 대륙 학자들과는 달리, 동아시아 나아가 전 지구를 염두에 두고 있는 왕샤오밍 교수와 다이진화 교수 그리고 이들과 학문적 지향을 함께 하는 소장 학자들의 글을 모은 것이다.


  이 책은 3부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부는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문화연구를 개괄한 글이다. 아편전쟁으로 자본주의 시장에 타율적으로 편입된 이후 신해혁명, 신민주주의혁명, 사회주의 등의 상전벽해 과정을 거친 중국은, 개혁`개방으로 경천동지의 과정을 겪고 있다. 19세기 중엽의 ‘종이 호랑이’에서 21세기의 ‘글로벌 차이나’까지의 험난한 과정에서 포스트사회주의 30년은 관건적인 시간이다.
  2부는 매체와 기호 그리고 문화정치 등의 주제를 다루었다. 노래방과 MTV 등의 매체는 중국인들의 서정형식을 바꾸고 있고, 샤오바오, 인터넷, 다큐멘터리 등의 새로운 매체는 중국인의 의사 표현 공간을 날로 다양화시키고 민중들의 다양한 삶을 표현하고 있다. 필자들은 다양화한 매체의 형식과 공간을 분석하면서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와 문화정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3부는 상하이 도시문화 연구에 관한 글들을 모았다. 최근 중국의 대도시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데 상하이는 그 가운데서도 발군의 속도로 왕년의 영광을 회복하고 있다. 중국 개혁`개방의 성과를 한몸에 아우르고 있는 상하이를 건축과 광고, 호텔과 모더니티, 바와 노스탤지어, 장아이링 붐과 상하이 드림 등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했다.
  용어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다. 한국의 근대`현대와 중국의 진다이(近代)`셴다이(現代)는 한자로는 같지만 그 기의가 다름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근대와 현대가 서유럽의 모던(modern)과 연계된 용어임에 반해 진다이와 셴다이는 중국 혁명사 시기구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기의가 다르다. 이 책에서는 서유럽의 모던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동아시아의 근현대’를 설정했고, 중국의 특수한 상황에 국한해서 진다이와 셴다이, 당다이(當代)를 사용했다. ‘최근’이라는 의미가 강할 때는 ‘당대’로 표기하기도 했다. 또 다른 번역어인 국족(nation)과 민족(ethnic)도 구분했다. 일국 내 소통의 정치학도 무시할 수 없지만 최소한 동아시아 역내 소통을 염두에 두고 용어를 다듬어야 할 것이다. 고유명사 표기는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을 따랐다.
  ‘중국 문화연구 공부모임’은 번역에 참여한 옮긴이들을 지칭하기 위해 만든 이름으로, 이 책 번역 이전에 구성원들이 한 자리에 모인 적은 없지만 모두 중국의 문화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실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분들이다. 엮은이와의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참여했지만, 문학에서 문화연구로의 확장이 문학을 더욱 제대로 연구하는 것임을 잘 아는 분들이다. 번역을 흔쾌히 맡아준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번역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이 책의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이정훈 교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의 ‘중국영화포럼’과 ‘연구위원회 콜로키엄(일명 잡담회)’은 최근 내 공부의 중요한 둥지다. 전자가 중국영화를 중심으로 문화연구를 논할 수 있는 자리라면 후자는 중문학을 중심으로 동아시아를 자유롭게 담론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간 함께해온 그리고 함께 할 동지들에게 두루 고마움을 표한다.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 한국 독서시장에 중국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의 출판계가 중국 소설 번역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중국의 웬만한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번역되고 있는 것은 전공자로서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의 중국 학습은 여전히 사서오경(四書五經)과『삼국지(실제로는 삼국연의)』를 중심으로 한 고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온고(溫故)의 편식도 문제지만 지신(知新)의 정보도 정치`경제적 동향에 국한되어 있다. ‘글로벌 차이나’ 시대를 대비해 폭넓은 온고와 더불어 사회주의 및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문화`사회적인 섭렵과 천착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 포스트사회주의 30년에 대한 문화연구 성과의 출간은 한국의 중국 학습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확신한다. 혜안을 가지고 출판의 용단을 내려준 현실문화연구의 김수기 대표께 감사드린다. 중국과 한국의 12명의 필자와 한국의 12명의 역자로 구성된 특이한 책을 꼼꼼하게 교정하고 멋있는 책으로 꾸며준 현실문화연구의 좌세훈 팀장과 편집부 식구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중국에 진지한 관심을 가진 강호제현의 기탄없는 비판을 기대한다. (2009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