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로 여행하는 중국

[정글만리]의 중국 인식과 문제점

ycsj 2022. 8. 26. 12:10

1) ?정글만리?라는 화두

대량의 중국 소설들이 번역 출간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작가 가오싱젠(高行建)과 모옌(莫言)의 작품을 비롯해 한국 독자에게 가장 환영받는다는 ?허삼관/쉬싼관 매혈기?의 위화(余華), 그리고 영화 <홍등>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쑤퉁(蘇童), 베이징의 왕숴(王朔)와 톄닝(鐵凝) 그리고 류전윈(劉震雲)과 옌롄커(閻連科) 등의 대표작들이 출간되었고, 상하이의 왕안이(王安憶)와 쑨간루(孫甘露), 산둥(山東)의 장웨이(張煒) 등도 소개되고 있는 중이다. 그 가운데 후난(湖南) 출신 작가 한사오궁(韓少功)심근(尋根) 선언’(1984)에서 비롯된 심근문도 주목을 요한다. 이들은 개혁개방시기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전통으로부터 정체성과 뿌리 찾기를 시도했는데, ?폐도?의 자핑와(賈平凹), ?백록원?의 천중스(陳忠實), ?아이들의 왕?의 아청(阿城)이 이 계열에 속한다. 심근문학의 범주를 조금 넓히면 문혁 시기 하방 되었다가 개혁개방 이후 도시로 돌아온 지식청년 문, 그리고 소수민족 문까지 포함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작품이 출간되었으니 한국 독서시장에 이른바 중국소설 붐이 일어날 법도 한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한국 작가의 중국 관련 기업소설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2013년에 시작된 ?정글만리? 붐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노벨상 수상 작품을 포함한 중국 소설이 한국 작가의 기업소설의 위세에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정녕 한국 작가의 수준이 중국 작가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기 때문에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그런 식으로 해석하자면 왜 한국 작가는 노벨상 프로젝트 운운하면서도 중국 작가가 넘은 그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일까?

근현대 초 백 년의 격절을 거쳐 1992년 수교 이후 20여 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문학과 관련된 한국의 일반대중의 독서 취향은 여전히 ?삼국연의??수호전? 그리고 ?서유기? 등에 머물러 있는데, ?정글만리? 가 이것들과 공유하는 것이 바로 장회체(章回體) 장치다. 연속극처럼 매 편 마지막에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을 배치하고 그 다음 편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장치가 장회체다. 그렇다면 조정래는 뛰어난 작가적 후각으로 장회체라는 장치를 터득해 응용하고 있는 셈이다. 권당 각 10, 장당 약 40쪽으로 구성된 텍스트는 마치 잘 빚어진 항아리(the well wrought urn)’처럼 한국 독자의 입맛에 맞춰져 있다.

?정글만리?는 쓸모가 많은 항아리. 그것은 대국굴기 중국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시의적절한 답변이라 할 수 있다. 앞당겨 말하면, 만리장성으로 대변되는 그 넓은 공간은 아무리 다녀도 모두 가볼 수 없고, 25사로 표현되는 3천 년의 역사는 그 속에 빠지면 헤쳐 나오기 어려운 망망대해와 같으며, 아무리 먹어도 다 맛볼 수 없다는 음식으로 대표되는 문화적 두터움 앞에서 규모에 압도되어 어쩔 줄 모르던 한국 독자들에게 ?정글만리?는 중국 인식의 출발점을 마련해 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완벽한 텍스트가 아니라, 백년간의 격절을 뛰어넘어 문득 우리에게 닥쳐온 중국을 이해하고 논의하기 위한 출발점일 뿐이다. 우리는 ?정글만리?가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중국이라는 두터운 텍스트를 해부하고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20144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에서 ?정글만리?를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한국 작가의 중국 관련 기업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해 중문학 연구자, 국문학 평론가, 칭다오(靑島)의 기업가를 패널리스트로 구성한 좌담회는 사회자의 치밀한 기획과 패널리스트들의 꼼꼼한 준비로 흥미로운 발언들이 오갔다. 좌담회는 각본과 콘티가 있었다. 특히 한국 독자들의 중국 알기 욕망의 수준과 지향을 ?정글만리?가 대변했다는 지적과 스토리텔링의 전략전술을 학습해야 한다는 제언은 귀 기울일 만한 성과였다. 특정 텍스트를 평가하는 것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당일 좌담회에서도 강의 교재로 삼았다는 언급도 있었지만, 1권을 읽다가 던져버렸다는 고백도 있었고, 농민공에 대한 서술이 표층적이고 조선족의 역할에 대한 언급이 없는 위험한 텍스트라는 평가도 있었다. 어쨌든 한국 작가의 중국 관련 기업소설이 독서계에 파문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관련 전공학회 학술대회의 주제가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조만간 중국어로 번역출간될 것이라는 정보는 우리로 하여금 ?정글만리?의 공헌과 가능성 그리고 그 한계를 명확하게 짚도록 핍박하고 있다.

?정글만리?2014년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몇 주 동안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작가를 인터뷰한 기자의 말에 따르면, 중국 관련 신문기사를 스크랩한 작가의 수첩이 90권이고, 중국에 관해 읽은 책만도 80권이며, 현장에는 2년간 여덟 번을 오갔고, 한 번 가면 두 달씩 머물렀다고 한다. 거기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또 수첩 20권에 달하는 준비를 했다(이도은, 2013)고 한다. 게다가 네이버 연재를 통해 입소문 전술도 충분히 활용했다. “조정래의 ?정글만리?는 올해 325일부터 4개월간 네이버에서 108회 연재한 후 책으로 출간한 것으로 수많은 조회 수와 댓글을 기록하며 화제가 되었다. 입소문이 자자하게 나면서 중국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체들에서 신입사원 교육용으로 대량 주문하는 등”(이종민, 2013: 365-66), 인터넷 연재는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인류학자의 현지조사에 맞먹는 공력을 들인데다가, 자본주의 문화산업 기제도 충분히 활용한 셈이다.

나도 ?태백산맥? 애독자이자 중국()학 전공자의 입장에서 ?정글만리?를 재미있게 읽었고 최근 중국 시장에 관한 민족지(ethnography)이자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학습 보고서라는 취지로 당시 연재하던 칼럼에 소개한 바 있으며(임춘성, 2013e) 그 칼럼 덕분에 인터뷰도 하고 두 번째 서평(임춘성, 2014a)도 쓴 바 있다. 첫 번째 글은 강추맥락이었지만, 텍스트를 꼼꼼히 읽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이 보였고 두 번째 글에서는 한국인의 중국 인식을 새로운 지평으로 이끄는 징후라는 평가와 함께 문제점도 지적한 바 있다. 다음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 ?정글만리?의 중국 인식

제목 정글은 중의적이다. 비즈니스 세계를 가리키기도 하고 중국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심지어 마오쩌둥의 복잡한 캐릭터를 가리킬 경우도 있다. 전자는 생존의 현장이라는 의미고, 후자는 온갖 나뭇가지들이 얽히고설켜 복잡 난해하다는 의미다. 나아가 인간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용어이기도 하다. 이는 꽌시(關係)’ 샹신원의 해외도피를 겪은 전대광의 평가다. 작가의 서사전략은 입문자 서하원 등이 전문가 전대광 등의 안내를 통해 중국을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들은 경제 수도 상하이와 정치 수도 베이징에서부터 시안, 칭다오, 광저우 등의 대도시를 오가며 중국을 답사하고 있다.

작가 조정래가 요점 정리하고 있는 중국의 사회와 문화는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의미를 결합시키고 표층 묘사에서 심층 분석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공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짝퉁과 장인정신을 연결시킨다든지, 공무원의 부패와 그것을 용납하고 있는 인민의 심리 기제, 개발과 매연, 폭죽놀이의 폐해와 그 경제적정신적 효과 등등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결혼식 풍경은 최근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 답사 코스다. 888위안을 넣은 빨간 축의금 봉투(紅包)와 그것을 현장에서 꺼내 위폐검사를 하는 모습, 북남과 남녀(北男南女)가 만나 두 번 결혼식을 치루는 것과 축하 퍼레이드를 위한 열 대의 빨간색 캐딜락 등은 중국의 체면 문화와 실용 문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중요한 지점들이다. 치관옌(妻管嚴), 라오펑유(老朋友)의 의미, 꽌시 문화, 포스트80 세대를 가리키는 바링허우(八零後), 숫자 8 선호, 소황제와 헤이하이쯔(黑孩子), 모던 치파오(旗袍), 허셰(和諧), 차 문화, 농민공 등등, 작가가 독자에게 알려주고 싶은 정보는 무궁무진하다. 특히 중국 사회의 작동 기제, 예를 들어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라든가, ‘신은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 ‘친구로 대하면 친구고, 적으로 대하면 적’, 그리고 마오쩌둥의 신격화 등은 중국 사회 작동기제의 최종 심급에 해당한다.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하나하나씩, 독자들에게 스며들 수 있도록, 적절한 콘텍스트를 구성해, 작중인물의 직접 경험과 그들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조정래의 장점은 중국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 이야기를 중첩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한국이 얼마나 민주화된 인간다운 사회인지를 중국에 와서 비로소 깊이 느꼈던전대광의 부인 이지선, 한국 엄마의 전형이랄 수 있는 송재형의 엄마 전유숙 등은 우리에게 한국과 비슷한 중국 그리고 한국과 다른 중국을 전달하고 있다. 특히 전유숙을 통해 자식을 위한 희생이 이데올로기가 되도록 살아온 이 땅의 엄마들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그녀들은 그런 엄마 밑에서 크면서 엄마가 이성적이었으면 하고 울부짖던 딸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사교육과 영어교육 열풍을 통해 중국식 전유숙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중이다. 미국에 당당한 자세를 취하고, 미국 종속적인 한국을 비판하면서도 미국화와 서양 바람이 득세하고 있는 곳이 중국이다. 커피 폭탄 세례, 화장하기, 명품 사냥, 성형 수술, 와인 바람, 골프 치기 그리고 이혼 유행 등은 모두 미국화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한국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현상이다.

그는 중국학 전공자들에게도 과제를 던지고 있다. 너희들이 중국을 알아? 너희들이 아는 것이 살아있는 지식이야? 그게 한국인의 중국 인식에 도움이 되는 거야? 그에 대해 모른 척 하는 것은 비겁한 방식이고 가능하지도 않다. 조정래는 투명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글만리?는 중국 인식에 대한 몇 가지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 입문자 서하원에게는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생각인지는 막연하면서도 중국사람들은 지저분하다 , 게으르다 , 거짓말을 잘한다 . 이런 부정적인 인상이 깊이 박혀 있었다. 어쩌면 그런 인식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1-33) 물론 이 부정적인 인상의 근원이 중국위협론에 토대를 둔 미국 언론을 카피한 국내 언론 보도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종합상사 경력 10년이 넘는 베테랑 전대광은 서하원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 하면 싼 인건비, 짝퉁, 불량식품 같은 것만 생각하지 초스피드의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모든 분야의 기술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요. 상대방을 얕잡아 보는 선입관도 있고, 발전이나 변화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심사도 작용하고 그런 거지요. 살아가면서 이런 것, 저런 것 알아가면 중국은 참 흥미롭고 재미있는 나랍니다.”(1-32) 조정래는 중국 인식에서 초보자 서하원과 베테랑 전대광의 첫 대면부터 한국인의 이중적인 중국 인식을 대조시키고 있다. 평균 한국인을 대표하는 초보자의 인식은 부정적인 반면, 중국을 알고 이해하는 전대광에게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나라인 것이다. 우리는 그 사이에 ‘10년 공부가 자리하고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조정래는 한국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중국을 웬만큼 이해하려면 10년 공부가 필요하다.’ 그만큼 중국은 두터운 텍스트(thick text)인 셈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부지기수다. 중국 입문자에 해당하는 한국인들은 하나같이 서하원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10년 정도의 베테랑이 되어야 자연스레 지중(知中)파가 되는 것이다. 중국의 시공간과 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10년 공부가 필요하다는 판단은 이후 한국인들의 중국 학습 기본 지침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등장인물 가운데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인물은 송재형이다. 송재형은 어머니의 강권으로 경영학을 공부하다가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바야흐로 중국사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는 베이징대 학생이다. 송재형은 몇 년 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중국은 틀림없이 미국과 맞먹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2천 년이 넘게 도도하게 흘러온 중국사는 연인 리옌링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그를 유혹하고 있다. 그는 다방면에서 흠잡을 데 없는 전도유망한 귀 밝고 눈 밝은(聰明)’ 청년이다. 자신과 너무 다른 친구 이남근에 대해서도 그 나름의 인생관을 존중할 줄 알고, 이남근의 작은 아버지가 짝퉁 사건으로 공안에 체포되었을 때 석방을 도와주면서 작은 아버지의 삶의 방식과 철학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지향 추구에 엄격하지만 타인에 대한 너그러운 이해심도 갖추고 있다. 그러기에 경영학에서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꿀 때 학교까지 찾아온 엄마를 매정하게 모른 척했지만, 훗날 역사학 전공을 기정사실화 한 후 귀국해서는 에미 맘을 풀어주고 떠날 줄 아는 아들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장성한 청년의 면모도 아우르고 있다. 대한민국의 총명한 젊은이들이 대부분 법대와 의대 그리고 MBA의 길로 달려가는 세태를 비판하듯이, 작가는 어머니의 강권으로 중국 경영학을 공부하다가 역사학으로 바꾼 송재형에게 자신의 소망을 이상적으로 투사하고 있다.

그는 독자들에게 두 차례의 특이한 경험을 전한다. 그것은 베이징대 학생들의 집단 인터뷰 관찰인데, 한 번은 미국 시사주간지와의 공개 인터뷰이고, 다른 한 번은 한국 일간지와의 인터뷰이다. 송재형은 인터뷰 관찰을 통해 중국 청년들의 식견과 배짱을 여실히 파악하게 된다.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된 미국 시사주간지의 인터뷰에서 진행자는 중국인들을 난처하게 만드는 질문들을 쏟아낸다. 예를 들어, 지적 재산권, 애플의 짝퉁 소탕전과 아이패드 상표권 등록 소송, 마오쩌둥 숭배 현상, 중미 관계 등에 관한 질문은 사실 중국의 치부를 건드리는 것들이었지만, 그에 대한 중국 학생들의 답변은 서양 중심의 논리를 반박하면서 중국 상황에 맞는 논리를 개발해 대응했다. 송재형이 놀라고 감탄한 것은 이들의 거칠 것 없는 발언과 배짱이었다. 특히 미중 관계를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친구로 대하면 친구고, 적으로 대하면 적”(1-317)이라는 답변을 듣고는 충격을 받고, 마오쩌둥 신격화에 대한 질문에 대해 신은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 (1-317)이라는 답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런 답변은 한국 학생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송재형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당당하게 답변하고 논쟁하는 중국 학생들의 태도다. 송재형은 문제가 뭔지 묻는 연인 리옌링에게 이렇게 말한다. “, 그러니까 말야 첫 번째 놀라움은 중국 학생들의 거칠 것 없는 발언이었어. 그 영어 실력은 대부분 그저 그런 보통 수준이었는데, 그런 영어 실력을 가지고 미국사람을 상대로 자기주장을 그렇게 당당하게 펼치다니. 그런 배짱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그저 놀랍고 감탄스러울 뿐이야.”(1-322) 작가는 전대광의 입을 빌어 DNA(1-331)으로 귀결시키지만, 이는 거꾸로 송재형으로 대표되는 한국인들의 상반된 DNA를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작가는 한 가지 사건을 통해 두 가지를 이야기하는 능력을 곳곳에서 선보이고 있다.

또한 ?중국의 붉은 별?을 통해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을 대외에 보도했던 에드거 스노의 무덤에서 시작한 한국 기자들과의 인터뷰는 역사학 전공 학생들의 역사의식과 현실 인식을 묻는 것이었고 나아가 동북공정과 같은 미묘한 문제도 있었고 짝퉁과 같은 거북한 질문도 있었지만, 중국 학생들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의연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한국에 대한 중국 대학생들의 다양한 평가는 한국 독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개혁개방 초기 모델이 싱가포르와 한국이었고 한류 열풍의 진원지이자 지금도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식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손바닥만 한 나라 것들이 좀 먹고살게 됐다고 건방을 떤다, 기술 좀 있다고 너무 거만하다”(2-270)는 비난을 하는 이중 감정은 돈은 중국에서 다 벌어가면서, 방위는 중국을 견제해 대는 미국 편에 서 있는 것에 대한 비판에서 정점에 이르고, “한국은 도자기점에서 쿵푸를 하고 있다”(1-302)는 비유로 조롱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최근의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예견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랜 시간 문학판과 중국연구에 몸담아온 필자가 보기에, 중국을 배경으로 한 기업소설은 성공을 거둔 듯하다. 무엇보다 독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으니 글쟁이의 본분은 다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역사소설가에서 중국 배경의 기업소설가로의 변신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작가의 변신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태백산맥? 등 한국 역사소설 시절부터 개념화라는 비판은 조정래를 따라다니던 평어였다. 이번 ?정글만리?에서도 개념화 수준이 과도하고 작가는 수시로 자신의 공부 심득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중국을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금과옥조가 되고 평균적 한국인의 중국 인식을 제고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중국 공부에 오래 몸담은 전문가들에게는 지루할 수 있다. 수시로 반복되는 정보와 강의 어투는 반감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문학 애호가들은 장르소설을 탐탁지 않게 여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글만리?는 중국과 한국인을 소통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변화를 권유 또는 강제하고 있다. 이 글에서 ?정글만리?를 한국 독자의 취향과 중국 인식 의향을 파악할 수 있는 시금석으로 설정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제 ?정글만리? 중국 인식의 편향과 한계를 살펴볼 차례다.

 

3) ?정글만리? 중국 인식의 문제점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정글만리?는 기본적으로 기업소설이다. 그러므로 그것에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것은 무리다. ?정글만리?에서 제공하고 있는 중국에 관한 정보를 일방적으로 가치 없다고 매도할 수는 없다. 나 또한 그것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정보가 작가의 편향에 의해 해석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작가론은 이 글의 몫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태백산맥?에서 받았던 신뢰와 감동을 부지불식간에 그대로 ?정글만리?에 투사하고 있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태백산맥??정글만리?의 거리에 대한 고찰은 별도의 과제로 넘길 수밖에 없지만, ?정글만리?에 드러난 작가의 편향은 그가 제공하는 정보를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작가의 편향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국족주의다. 작가의 국족주의 색채는 당연하게도 이중 전술을 취하고 있다. 한국/한국인에 대한 칭찬과 외국 특히 일본/일본인에 대한 폄하가 주를 이루고 있다. 똑같은 중국 주재 회사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주재원들은 중국어에 능통하고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데 반해, 일본 주재원들은 통역 없이는 중국인 고객과 의사소통을 못하고 중국인 직원들의 문화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일본인 주재원들이 하나같이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 것으로 묘사된 것은 과도하다. 내가 중국현대문학/문화연구를 매개로 국제컨퍼런스에서 만난 일본 학자들은 대개 중국어에 능통했다. 이로 미뤄보아 일본인 주재원 가운데 중국어를 잘 하는 중국통이 적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뿐만 아니라 가라오케와 집단 매춘은 일본인과 연계시켜 묘사하고, 올드 상하이 노스탤지어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사샤스(Sasha’s)’와 같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활약하는 콜걸은 서양인의 몫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발마사지방 가운데 건전한 곳은 전대광을 보내고 퇴폐적인 곳은 도요토미 아라키를 보내고 있다. 이런 묘사는 국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면서 한국인의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하게 만들고 있다. 동북공정 등에 대한 일방적인 이해 등 ?정글만리?의 국족주의 색채는 다른 장점을 뒤덮을 만큼 도처에 드러나 식견 있는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그 다음으로 남성중심주의를 들 수 있다. 숭녀공처(崇女恭妻)라는 중국의 사회적 가치관에 대해 작가는 못마땅함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마오쩌둥이 시행한 여성해방으로 인해 중국은 여자들에게는 천국이지만 남자들에게는 지옥이라는 것이다. 한자 실력까지 동원해 남()성은 밭에 나가 일하므로 가사노동은 여자가 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에 따른 역할 분담이고 업무 분업이라는 인식을 읽다 보면 고루한 가부장의 모습이 느껴진다. 그러기에 여성의 성적 자유를 성적 문란으로 비판하지만 남성의 성적 타락에 대한 비판은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전대광이 김현곤을 찾아 시안에 갔을 때 싼페이(三配)를 낭만이자 멋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는 한자 남()에 대한 해석을 전제할 뿐, 그 글자가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대도시 중국 청춘 남녀들의 혼전 동거가 많아진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은 비단 중국에 국한된 현상도 아니고, 더욱 중요한 것은 혼전 동거를 단순하게 성적 문란으로 바라보는 시선에는 사회학적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 부모 세대의 결혼 생활을 익히 보아온 젊은 세대가 이혼이라는 시행착오의 전철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대안을 모색하는 측면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 청년들의 만혼 및 비혼 추세와도 연계시켜 고민해야 할 지점이지만, 작가는 그런 성찰 없이 성적 문란, 그것도 남성들에겐 면죄부를 주고 여성들의 성적 문란만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성적 문란을 비판하면서도 성애 장면은 아저씨 소설수준으로 묘사함으로써 아저씨 독자들을 끌어당기고 있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정글만리?의 성공과 문제점의 핵심에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 도사리고 있다. 모두 알다시피, 전지적 작가 시점은 현대소설에서 거의 쓰지 않는 기법이다. 전지적 작가는 중세의 신에 해당한다. 작가만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독자들은 작가가 알려줘야만 정보를 알 수 있다. 이것이 전지적 작가 시점의 존재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작가는 중국에 무지한 평균 한국인을 독자로 설정하고 자신의 학습 심득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소설적 맥락에서도 전지적 작가 시점만큼이나 어설픈 장치가 도처에 드러나고 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그리고 미묘한 것임을 작가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느 순간 복잡하고 미묘한 마음을 털어내고 단순한 확성기로 바뀌고 만다. 누구를 막론하고 작가의 손에 걸리면 그 대변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작가는 중국 공부의 심득(心得)을 독자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선명자(善鳴者), 즉 자신의 말을 잘 대변할 화자를 선택한다. 종합상사원 전대광과 포스코 직원 김현곤이 그들이다. 두 화자의 공통점은 중국 지사 생활 10년을 넘긴 영업부장이란 점이다. 이들은 중국 전문가도 아니고 지식인은 더더욱 아니다. 이들은 회사 방침에 따라 세일즈를 위해 중국어와 중국의 사회와 문화를 공부했다. 회사 방침에 따라 세일즈의 가장 강한 무기로 중국을 공부한 것이다. 다행히 전대광과 김현곤은 중국이 최대 시장이라는 사실에 만족하고 중국의 문화와 역사가 공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수천 쪽짜리 백과사전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중국 사람들이 사람의 마음의 깊이를 재고 무게를 다는 사람들이라는 발견에 흡족해 한다.

작가는 이들의 입과 생각을 빌어 자신의 심득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때론 장광설이 없지 않지만, 그만한 분량에 그렇게 많은 정보를 요령 있게 넣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토론을 통해 쟁점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영양가가 높은 편이다. 특히 시안에 관한 김현곤의 사색은 일품이다. 이를테면 문물을 만든 도공들과 그들을 짐승처럼 부린 권력자들을 대비하며 과연 누가 역사의 주인공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김현곤은 웬만한 중국사 전공자를 찜 쪄 먹는 수준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수준으로 인해 조정래의 선명자들은 진정성에서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전대광과 김현곤 같은 회사원이 존재할 리 없다고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공부한 결과를 수시로 작중인물에 투사함으로써 리얼리티를 손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중인물의 독백과 사색이라는 장치는 작가가 자신의 심득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장치에만 이르면 전대광이 하건 김현곤이 하건 그 외의 어떤 화자가 하건, 독백과 사색의 톤이 천편일률이다. 조금만 예민한 독자라면 그 독백과 사색은 작가가 그때그때 필요한 인물을 골라 자신의 심득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고, 한발 나아가 작가의 중국 역사 문화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려운 것이다.

작가는 중국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건드리면서 고희의 언덕에서 이런저런 심득을 토로하고 있지만, 깊이 있는 새로운 성찰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중국 유학 경험자들 사이에서 ‘3-5년차 주재원들의 블로그를 편집한 느낌이라는 혐의도 받고 있고 서사학과 창작을 공부하는 젊은 학생들에게는 허접한 아저씨 소설이라는 혹평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글만리?는 현재 평균적인 한국인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중국 입문서 성격을 띤 기업소설이고, 기업소설의 옷을 입은 계몽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급변하는 중국이라는 제재를 빈 작가의 강연집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글만리?는 눈 밝은 독자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력과 경륜을 갖춘 작가가 맘먹고 잘 빚은중국 관련 기업소설/계몽소설에 많은 독자가 환호하고 있다면 그 나름의 효용이 있는 법. 희수의 나이에 중국 학습서를 출간한 조정래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그의 학습노트를 지침으로 삼아 ‘10년 공부의 과정을 거쳐 중국을 제대로 인식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중국에 대해 심층 인식의 단계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임춘성, 2017,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문화정치와 문화정체성], 문화과학사, 350-3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