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상하이 영화: <대로> (1), (2)

이번 호부터는 ‘올드 상하이 영화’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올드 상하이 영화의 시공간은 1930년대 ‘올드 상하이(old Shanghai)’이다. 이 시기에 무성영화와 유성영화가 공존하며 활발하게 창작되었고 이 지역에 영화제작사가 편중되어 있었으며, 영화 제작 편수와 관객 등도 가장 많았다. 이런 점을 볼 때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전까지 중국영화의 메카가 상하이였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후 둥베이영화제작소(東北電影制片廠)를 중심으로 베이징(北京) 등 여러 지역으로 나뉘어 영화 제작이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상하이에 집중되었던 영화제작 거점이 분산되었고 신시기에 들어서는 지난날의 명성도 차츰 시들해졌지만, 1990년대에 진입하여 ‘올드 상하이’를 회상하는 영화가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중국에서 첫 영화는 1896년 8월 11일 상하이의 자베이 탕자룽(閘北唐家弄)에 위치한 쉬위안(徐園)의 찻집 유이춘(又一村)에서 방영된 서양그림자극(西洋影戱)이었다.

무성영화 시기인 1913-1931년 사이 모두 722편의 영화가 상하이에 있는 영화제작소에서 제작되었다. 이런 추세를 타고 영화 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하다가 1931년 9․18사변과 이듬해 1․28 상하이 사변으로 30개의 영화제작사가 문을 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2-1937년 동안 상하이의 영화제작사에서는 442편의 극영화를 제작한다. 1937년 쑹후 대전을 치르고 나서 상하이 조계는 ‘외딴 섬’으로 남게 되지만, 일본 점령시기(1938-1941)에도 무려 100여 편의 극영화를 제작한다. 당시 베이징의 영화제작소에서는 1926년부터 1948년까지 통틀어 고작 27편의 영화가 제작되었을 뿐이었다.

오늘은 올드상하이영화의 첫 편으로 1930년대 중국영화의 거장 쑨위(孫瑜)의 <대로(大路. THE HIGHWAY)>를 보도록 하자. 이 영화는 중국의 루돌프 발렌티노라고 불렸던 상하이의 조선인 황제 김염(金焰)이 주인공을 맡은 작품이기도 하다. 1935년 롄화영화사(聯華影業公司) 출품작으로, 런닝타임은 102분이다.

주인공 진거(金哥)의 부모는 고향의 굶주림을 피해 대도시 상하이로 이주한다. 그 도중에 모친은 사망하는데, 죽기 전 남편에게 “앞으로 가세요”라는 말을 남긴다. 부친은 도시에서 막노동을 하며 진거를 양육한다. 진거는 자연히 막노동 현장에서 잔뼈가 굵어져 가고 부친마저 잃은 후에는 막노동판의 중심인물로 성장한다.

그는 노동자 사이의 갈등, 골목길에서의 사건 등을 도맡아 해결한다. 실지(失地)로 걱정하는 라오장(老張)을 격려하고, 동료들 간의 갈등을 해결하며, 길가는 아가씨를 희롱하는 장다(章大)를 훈계하고, 심지어 좀도둑으로 몰린 한(韓)을 구해주고 그를 자신의 그룹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들 6인의 그룹은 도로공사 현장에서 지도그룹을 형성한다. 진거는 리더답게 일자리를 찾지 못해 불안해하는 동료들에게 내지 도로공사를 제안한다. 그들은 “타인이 통치하는 도회에서 구차하게 사는 것”을 포기하고 내지로 가서 도로를 건설하고자 한다. 이때 타인의 기의는 분명치 않다. 가까이는 그들을 해고한 사장(또는 그들의 대리인)일 수 있고 멀리는 외국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주 노동자에게 대도시는 삶을 도모하기에 쉽지 않은 곳이다. 결국 그들은 그동안의 삶의 현장을 떠나 내지의 도로공사 현장으로 떠나야 했다. 물론 ‘애국’이라는 명분 아래. 평상시 쌓아둔 진거(및 그 그룹)의 신망 덕분에 다른 실업 노동자들도 자연스레 합류하게 된다.

영화에서 명확하게 언급되지는 않지만, 당시 상하이의 일반 상황과 영화 속 이들의 친밀한 관계로 미루어 볼 때, 이들은 동향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동업조직이다. 어려서 부모를 따라온 진거가 대도시 공사판에서 자라면서 터전을 닦고 그를 바탕으로 그룹이 형성되어 간다. 그러기에 도시 공사장에서 해고된 후 일자리를 찾던 중 내륙의 도로공사 현장으로 가자는 진거의 제안에 그룹 성원들은 흔쾌히 따라 나설 수 있었다.

이들의 구성은 다양하다. 고아, 대학생, 좀도둑 등. 이들은 도시 변두리에 거처하면서 서로 의지하며 삶을 도모한다. 서로 다투기도 하지만 내부 갈등은 리더(大哥)에 의해 조정된다. 그들의 삶은 고달프지만 나름대로 삶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 후에 언급하겠지만, (이는) 이들(이) 대부분+은 생계형 이민이므로, 당시 강남에서 가장 좋지 않은 환경일지라도 자신의 고향보다 좋다고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27년 전 진거(金哥)의 어머니는 피난 중에 죽게 되는데 어린 아들을 남편에게 맡기며 “아이를 안고 빨리 가세요, 길을 찾아서, 앞만 보고 가세요”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르고 진거는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하고 뜻이 통하는 여러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묵묵하고 강직한 라오장(老張), 진실하고 의리가 있는 장다(章大), 꾀가 많은 한샤오류쯔(韓小六子), 어린 샤오뤄(小羅), 총명하고 박식한 정쥔(鄭君)과 함께 진거는 도시에서의 착취당하는 생활을 접고 내륙에서 군사용 도로를 만드는 작업대에 참가한다.

도로 건축이 한창인 현장에는 이들이 식사를 대고 먹는 정씨네 식당이 있는데 식당주인 딸 딩샹(丁香)과 예인 출신인 모리(茉莉)가 함께 일을 돕는다. 전시 상황은 긴박하게 변하고 현장 작업대와 군인들은 밤낮이 없이 공정이 진행되는데 적군은 이 길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부근의 매국인사를 시켜 이 공정을 막도록 한다. 매국인사는 작업대에서 영향력이 있는 진거와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이들을 매수하려고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그들을 지하감옥에 가두게 된다. 딩샹과 모리는 그들이 돌아오지 않자 음식을 배달한다는 명목으로 그 집에 찾아가고 꾀를 써서 이들을 구출한다. 도로가 개통된 직후 적기의 습격을 받게 되고 이 자리에서 진거와 친구들은 도로를 보호하기 위해 투쟁하다가 모두 전사한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딩샹은 마침내 군대가 이 길을 따라 전진하는 것을 보면서 마치 진거와 청년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 환상에 빠진다. 이때 멀리서 대로가(大路歌)가 울려 퍼진다.

이 영화는 감독이자 시나리오를 쓴 쑨위의 작품으로, 비슷한 시기 그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주제들을 대중적 감성으로 담아내는 데 성공한 영화로 평가받는다. 국민당의 영화 검열로 직접적인 정치성을 노출시킬 수 없었다는 점은 오히려 이 영화의 대중적인 코드를 돋보이는 기제로 작용한다.

첫째, 신체 미학적 관점은 ｢대로｣를 읽는 중요한 코드이다. 지방 도로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남성 노동자의 육체는 강렬한 페티쉬로 전시된다. 특히 그들이 강가에서 목욕하는 씬이나 남성들을 하나씩 호명하여 상상하는 모리의 시선에서 그들의 육체는 클로즈업을 통해 대상으로 재현되고 욕망된다. 모리의 시선은 일방적인 권력화된 시선을 분열시키는, 혹은 되돌려줌으로써 주체적인 시선을 확보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로 읽을 수 있다.

두 번째로, 영화에 삽입된 노래 씬에 주목할 수 있다. 1930년대 중국영화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노래 씬이 사랑의 슬픈 감정이나 식민지적 상황을 효과적으로 전달한 것처럼, 이 영화에서도 사랑의 감정을 전하는 ‘연연가(燕燕歌)’나 현실적 재난을 슬퍼하는 ‘봉황가(鳳凰歌)’ 역시 이러한 역할을 한다. 특히 ‘봉황가’를 부르는 노래 씬에서 모리의 시선과 그녀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 사이에 전쟁 관련 다큐멘터리가 삽입되면서 쇼트-리버스 쇼트라는 인과관계의 구도가 파괴되고 시선의 확장이 확보된다. 캐릭터, 관객, 중국 민중으로의 시선의 확장은 사회적 메시지를 선동적으로 전달하는 일방적인 방식이 아니라 기존 형식의 틀을 파괴하면서 파생되어지는 간극을 통해서 주체적인 인식의 시공간이 확보되면서 리얼리티의 진정성을 극대화시킨다. 한편 이 노래 씬은 할리우드 뮤지컬 양식이 중국화를 거치면서 만들어낸 협상과 중재의 번역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결말처리 또한 특기할 만하다. 영화의 서사적 측면에서 ‘밝은 결말(光明的尾巴)’으로 불리는 보편적인 결말 처리는 1930년대 영화 관객과의 협상의 장으로서 위치하는 데, ｢대로｣에서는 주인공들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이 선행되고 난 후 딩샹의 시선 속에서 환상으로 되살아난다. 모리의 시선과 동일시되던 관객들은 현실의 비극성을 환상 양식을 통해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환상 시퀀스는 그 자체로 완전히 ‘현실적’이지도 완전히 ‘비현실적’이지도 않는 그 둘 간의 어딘가에 놓이기 때문에 관객은 ‘그 현실 너머’의 그 어느 곳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하다.

런던 킹스 컬리지의 크리스 베리 교수는 최근 「한-중 스크린 커넥션: 파편들의 역사를 향하여」라는 글에서,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을 지향하면서도 네이션의 감옥에 갇히고 마는 현실에서, ‘방법론적 내셔널리즘’을 경계하면서 트랜스내셔널 시네마 연구의 본래의 목적들을 환기하기 위한 하나의 반증으로 한-중 필름 커넥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베리 교수는 그동안 불충분한 자료 발굴과 복원으로 인해, 그리고 방법론적 내셔널리즘에 의해 ‘막혀 있던(Occluded)’ 파편들을 발굴해, 그것들을 토대로 삼아 기존의 내셔널 시네마 역사에 흠집을 내고자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트랜스시네마 연구방법론의 설득력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한중 커넥션을 글로벌리제이션에 선행한 동시에 글로벌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의미 있어 보인다.

크리스 베리는 특히 중국영화사에서의 방법론적 민족주의는 김염/진옌의 한-중 트랜스내셔널 지위를 가로 막았다 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그는 조선인으로 태어났지만 조선인 정체성을 거부하고 중국인 정체성을 선택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정치적 좌익의 반(反)식민주의자들로 구성된 ‘상하이의 한국 문화 커뮤니티’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와 결합해 해명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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