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한밤중(子夜)> (5)

ycsj 2015. 5. 14. 08:45

<한밤중(子夜)> (5): 신흥 계급의 등장

 

증권교역소가 금융자본가의 주무대라면, 공장은 산업자본주의의 심장이다. 그러나 한밤중에서 공장은 생산 현장으로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파업을 추동하는 노동자와 그것을 막으려는 회사 측의 대응으로 점철되어 있다. 19305월부터 7월까지 우쑨푸의 위화(裕華) 제사공장은 자본주의의 심장 역할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쑨푸가 보기에 지금의 노동자들은 이미 이전의 노동자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중국의 노동자들은 수많은 투쟁을 통해 단련되기도 했지만, 훨씬 더 많은 좌절의 경험도 맛보았다. 그들은 제국주의, 자본주의, 봉건주의라고 하는 삼중의 압박 아래 유례없는 생활의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그 현장이 바로 공장이었다. 마오둔은 우쑨푸가 경영하는 위화 제사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집중적으로 묘사하여 당시 노동자의 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특히 투쟁하는 노동자는 신흥계급인 노동자 가운데서도 선진적인 그룹이었다.

이들은 각성한 노동자로, 자신의 계급적 현실과 사회구조의 모순을 깨닫고 공장 내에서 일반 노동자 대중을 계몽시켜 파업을 지도하는 그룹이다. 천웨어(陳月娥), 허슈메이(何秀妹), 주구이잉(朱桂英) 등이 이들을 대표한다. 그들은 공산당 활동가들의 지도를 받아 공장 내에서 타오웨이웨 등과 대립하면서 암암리에 일반 대중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려는 노력을 전개한다. 그들은 야학을 통해 글자를 깨치고 노동자 문예소조에서 문학적 소양을 배양하여 노동자 통신원의 주체가 되었다. 이들은 이미 자신의 열악한 생활조건 속에서 자연적으로 각성을 해나가기도 했다.

주구이잉의 궁핍한 생활과 분노, 의지가 그 전형적인 예이다. 비참한 생활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버텨 온 그녀에게 가뜩이나 낮은 임금에서 다시 2할이나 인하한다는 이야기는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녀가 현재의 생활을 인내할 수 있는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현재의 그녀를 지탱해 주는 기둥이었다. 그러나 미래의 기대에 희망을 걸고 산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자신을 버티게 해주는 최소한의 생계는 해결되어야 한다. 최저 수준의 생존까지도 위협하는 임금인하 소문은 그녀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게다가 땅콩 행상을 다니는 그녀의 어머니가 무심결에 공산당 선전물을 포장지를 사용했다고 해서 물건을 압수당한 사건까지 일어났던 것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무런 해결책도 발견되지 않는, 악화일로로 내닫는 상황은 그녀로 하여금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노동자의 각성 여부가 기존의 부조리한 체제에 순응하느냐, 아니면 그것에 반항하느냐의 여부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 시기 중국 노동자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장 내의 지도책임을 맡고 있는 천웨어의 모습에서 1930년대의 이들 선진적 노동자들의 지식수준과 의식수준이 그다지 높은 편이 못됨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연대파업의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한 회의에서 비교적 자유분방한 여성 활동가인 차이전(蔡眞)이 공장의 상황을 묻자 이에 대해 천웨어는 떠듬떠듬 힘들고 간단한 어투로 오늘 낮 작업장의 상황과 방금 야오진펑(姚金鳳)의 집에서 가졌던 집회에 관해 설명했다.” 그녀가 투쟁정서가 고양되어 있으므로’ ‘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고 대답한 부분은 사실 일반 노동자 대중의 실제와는 거리가 있다.

천웨어의 답변은 조직에서 요구하는 것에 대한 모범답안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주체적인 입장을 확보했다기보다는 자신을 지도한 활동가들의 의견을 주입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의 각성은 아직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각성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녀가 자신의 견해를 주체적으로 가지기 시작한 것은 파업이 실패한 후 소집된 회의에서 마진(馬金)의 의견에게 동조한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마진은 리리싼(李立三) 노선의 화신인 커쭤푸(克佐甫)의 견해에 대립되는 의견을 제시했었다. 또한 파업현장에서 보여주었던 수동적 태도는 천웨어를 중심으로 하는 공장 내의 지도그룹의 현주소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초보적으로 각성한 노동자들은 아직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출로를 찾지 못했다. 이들에게는 길 안내자가 필요했다. 커쭤푸, 차이전, 마진, 쑤룬(蘇倫)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은 지식인 출신의 공산당 활동가들인데, 그 동안의 혁명과정을 겪으면서 이들 내부에서도 일치된 의견이 존재하지 않았다. 작품에서는 커쭤푸-차이전 대 마진-쑤룬의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회의에서의 결정은 책임자인 커쭤푸의 주장대로 관철되는데, 그는 리리싼 노선을 추종하고 있다. 마오둔은 이들의 회의장면을 핍진하게 묘사함으로써 좌경 모험주의 노선을 측면적으로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