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한밤중(子夜)> (4):

ycsj 2015. 5. 7. 13:59

 

이제는 증권을 통해 대박을 노리다가 쪽박을 찬 얘기들이 심상해졌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런 얘기들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재생산되고 있다. 스룬주(施潤玖) 감독의 1999년 작 아름다운 신세계(美麗新世界)에서도 상하이 여성 진팡(金芳, 陶虹)은 힘들게 번 돈을 일확천금의 허황된 꿈을 안고 주식에 투자하고 심지어 남주인공 장바오건(張寶根, 姜武)의 돈까지 털어 넣지만 결국 모두 날리고 만다. 소설 속 증권교역소의 모델이었을 상하이 화상(華商)증권거래소1933년 새롭게 단장했는데,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시설이 완비되고 규모가 가장 큰 증권거래소였지만, 항일전쟁 발발 후 영업이 정지되었다. 이는 19901219일 새로 개장한 상하이증권거래소의 전신이기도 하다.

우쑨푸의 반대편에서 우쑨푸를 공채투기에 끌어들이고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으로 그를 자신의 휘하에 편입시키려는 인물이 금융자본가 자오보타오다. 그는 착상이 기발하고 판단력이 빠른데다가 행동이 대담하며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미국 제국주의를 위해 길러진 매판자본가로서, 미국 자본을 근거로 하여 자금난을 겪는 작은 공장들을 인수하고 어느 정도 자본이 축적된 기업들을 합병하여 트러스트를 조직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그에게 산업입국을 표방하는 우쑨푸나 산업자본가들의 연합체인 이중회사는 눈엣가시가 될 수밖에 없다. 우나으리의 장례식에서 처음 등장하는 그는 우쑨푸를 유인하는 미끼로 공채투기의 조그만 비밀을 제공하여 우쑨푸를 뛰어들게 만든다. 기본적으로 우쑨푸가 작품 전편을 통해 공채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 것은 바로 자오보타오가 던진 이 미끼를 문 것에서 기인했다. 이후의 과정은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가 발버둥 치다가 결국에는 잡혀 먹히는 과정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쑨푸가 험난한 풍파를 뚫고 성장한 대어임에는 분명하지만 우쑨푸를 요리하는 자오보타오는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낚시꾼임에 틀림없다. 그는 주인추의 누에고치 자금이라든가 이중회사의 예금 인출 등의 낚싯줄을 늦추지 않고 대기하고 있다가 마지막 대결에서 우쑨푸에게 치명타를 가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주로 사용한 방법은 바로 우쑨푸 주위에 있는 인물의 매수였다. 우쑨푸의 공채시장 대리인 한멍샹(韓孟翔)과 정보원 류위잉(劉玉英)을 매수하여 우쑨푸에게 등을 돌리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형이자 사업 동료인 두주자이로 하여금 공채시장에서 우쑨푸 진영을 이탈하여 자오보타오 진영에 가담하게 했다. 이처럼 자오보타오는 온갖 경제적 수단을 동원하여 우쑨푸를 옥죌 뿐만 아니라, 기존의 가치관을 완전히 무시한 채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타인에게까지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일탈을 강요함으로써 자신의 궁극적 승리를 노린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1930년대 상하이 공채거래소에서는 금융자본이 독판치는 형세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우쑨푸와 자오보타오 등 대자본가 외에 주목할 만한 인물로 류위잉(劉玉英)을 들 수 있다. 소액 투자자이자 대투자자의 정보원 노릇을 자처하는 류위잉은 총명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십여 년 전 증권시장의 파동으로 파산하여 자살했다. 그녀의 오빠 역시 투기꾼으로, 그의 반평생은 횡재야간도주의 되풀이였다. 그녀의 시아버지인 루쾅스(陸匡時)와 이미 세상을 떠난 남편은 모두가 입만 뻥긋했다 하면 입찰가격이니 공채니 하는 얘기만 하던 이들이었다. 최근엔 그녀 자신도 증권거래소를 낮 동안의 으로 삼고는 도박을 하는심정으로 만 원 어치를 사들였다 다시 오천 원어치를 팔았다 하고 있었다. 거래에 있어서 그녀는 냉정했다. 그녀는 아버지와 오빠 심지어 남편의 전철을 거울삼아 견실하게 행동했다.”

그녀는 안정적으로 자금을 운용하되 자신의 몸을 밑천으로 이용할 줄도 알았기에 자오보타오와의 교류도 투기의 일환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그러기에 그녀는 공채거래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자오보타오의 호텔방을 찾아가는 것을 서슴지 않았고 심지어 그가 다른 여자와 같이 있는 것도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이런 그녀의 입장에서 볼 때 거래소에서 일희일비하는 소액 투자자들을 바라보면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거래소를 조종하는 거물들은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시가나 물고 있을 테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1930년대 상하이 공채거래소에는 전란을 피해 상하이로 온 지주 펑윈칭부터 민족자본가 우쑨푸와 매판자본가 자오보타오, 중개인 한멍샹과 정보원 류위잉 등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구성하고 있었다. 여기에 지식인과 정객 그리고 군인 등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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