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韓中 ‘批判的 東Asia 談論’의 接點을 爲해

ycsj 2010. 7. 25. 09:21

인하대학교 중국학연구소-한국학 B.K.사업단 공동 콜로키움 해외석학 초청 강연 (2010.07.23)

패널토론문:

 

韓中 ‘批判的 東Asia 談論’의 接點을 爲해

 

1.‘비판적 동아시아담론’이란 인문학/문화 범주에서 동아시아 지역(region) 각 국가 사이의 소통을 중시하는 담론을 가리킨다. 中國發 동아시아담론으로, 日本과 中國의 근현대 사상사의 심층을 가로지르는 쑨거(孫歌)의 논의가 있고, 日本의 최근 논의로 고모리 요이치(小森陽一)와 마루카와 데쓰시(丸川哲史)의 자기 비판적 담론이 있다. 한편 韓國發 동아시아론의 진원지에는 ‘창작과비평’ 진영의 최원식(崔元植)과 백영서(白永瑞)의 논의가 있다. 그러나 이들 간의 소통은 그다지 활발한 편은 아니다. 中國과 日本의 자료들은 종종 韓國에 소개되고 있지만, 역의 방향, 즉 韓國 자료가 中國 또는 日本에 소개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오늘 발표자 孫歌의 경우에도 그 주요 자료가 韓國에 소개되어 있지만, 韓國 동아시아담론의 대표 논자인 崔元植의 경우 中國어권에는 거의 소개되어 있지 않다. 두 분의 글에는 상호 참조가 거의 없다. 상호 참조가 없으면서도 不謀而合으로 공감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동지적 연대’의 가능성을 현시하고 있고 나아가 향후 긴밀한 소통이 이뤄진다면 보다 진전된 담론으로 승화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오늘 내가 할 일은 두 논자의 접점을 제시하면서 진전된 논의를 위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아래에서 약간의 중복을 감수하면서 몇 가지 지점을 살펴보자.

2-1역사인식의 차이와 연계된 것이자 그 근원이랄 수 있는 내셔널리즘(nationalism)과 ‘覇道的 大國主義’에 대한 警戒를 들 수 있다. 앤더슨(Anderson, Benedict)의 ‘상상의 공동체’ 이후 내셔널리즘이 많은 비판을 받았고 최근에는 탈민족주의에 대한 비판도 무성하다. 내셔널리즘과 민주주의의 균형이라는 관점(최원식 2009, 34)이 필요하고, 네이션(nation)은 상상의 공동체가 아니라 ‘共同體의 想像’이라는 지적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 또한 아시아를 내셔널리즘을 사유하는 중요한 시각(쑨꺼 2003, 85)으로 삼았다.

孫歌는 동아시아의 진정한 상황이란, 복잡한 패권관계가 ‘내부’와 ‘외부’가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통해서 아시아 내부의 패권관계와 동양에 대한 서유럽(특히 미국)의 패권관계가 서로 긴밀하게 얽어매는 상황(쑨꺼 2003, 16)이라 지적한 바 있다. 崔元植은 동아시아를 함께 사유하는 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패도적 대국주의’를 읽어낸다. 근대의 충격 속에 잃어버린 자존을 회복하기 위해 대국굴기를 꿈꾸는 中國, 패전의 폐허를 딛고 이룩한 경제대국을 바탕으로 ‘보통국가’로 부활하려는 日本, 분단과 전쟁의 고통 속에서도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달성한 드문 경험으로 먹이로 통일을 지향하는 韓國, 세 나라 모두에 대국의 꿈이 비등한다.(최원식 2009, 21) 분단체제의 한반도에조차 大韓國主義的 統一論과 大朝鮮主義的 統一論이 대립하고 있다. 그의 대안은 다음과 같다. “‘논리적 양식’까지 말살하는 민족주의의 충돌을 근본에서 억지하는 小國主義를 평화의 약속으로 회상하면서 대국 또는 대국주의의 파경적 충돌을 완충하는 中型國家의 역할에 韓國이 충성한다면 동북아의 평화도 먼 일이 아닐 것이다.”(최원식 2009, 31) 소국주의에 기초한 중형국가는 한 국가에서만 시행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동아시아 지역 내 국가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한반도를 출발점으로 볼 때, 韓國과 朝鮮이 합의하고, 日本 및 中國과 합의하며 동남아 각국과 합의한다면, 나아가 세계 각국과의 합의로 나아갈 수 있다면 이는 그야말로 大同世界가 아닐 수 없다. 孫歌 또한 기존의 동아시아 시각에는 냉전의 형성과 해체가 동아시아에 가져다준 국제적 변동이라는 역사적 시야가 빠져 있다고 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북한 핵문제에 대한 태도이다. 그가 볼 때 동아시아담론의 하나로 간주되어야 할 북한의 핵문제가 단지 일회적인 국제정치문제로서 다루어질 뿐, 동아시아라는 틀과 연계되어 인식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쑨거 2009, 42) 그러므로 그는 한중일 공히 ‘冷戰構造 속의 東아시아 視角’을 가질 것을 주장한다. 냉전구조가 사실상 해체된 상황에서조차 냉전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독립된 채로 불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갈수록 단순화되고 경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2동아시아 각국의 脫亞 傾向. 日本의 脫亞入歐는 모두 잘 아는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의 韓國과 개혁개방 이후의 中國도 급속한 탈아 경향을 보이고 있다. 탈아는 이전에 서유럽에 경도되었지만 2차 대전 이후에는 美國化(americanization)로 집중되고 있다. 韓國 사회에서 미국화란 “20세기 초반 미국의 다양한 제도와 가치가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 재편성과 (정보) 커뮤니케이션 혁명을 토대로 세계 각 지역에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지고, 그 결과 수용 지역에서 자발적이거나 강요에 의해 그러한 것을 베끼고 따라잡는 현상과 과정”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韓國은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中國의 탈아 경향에 대해 孫歌는 이렇게 평한다. “실제로 최근의 가장 비판적인 지식인들은 서구는 시야에 두고 있지만, 아시아 특히 가까운 동아시아는 진정한 의미에서 시야에 담고 있지 않다.”(쑨거 2007, 18) 개혁개방 이후 現代化의 길을 선택한 中國도 미국화의 길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 日本이 과거부터 탈아입구했었다면 中國은 지금 脫亞入‘球’하고 있다. 韓中日 3국에서 美國은 ‘不在하는 現存’으로 깊숙하게 內在化되어있다.

한중 양국의 미국화 경향으로 인해 양국의 상호 관심은 한미, 중미 관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박약하다. 또 한 가지 지적할 것은 날로 증가하는 경제 교류에 반해 현재 한중 문화 교류는 심각한 불균형 상태를 노정하고 있다. 한류 현상으로 인해 韓國->中國의 흐름이 주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대중문화에 국한된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한류 이외의 분야, 교육과 번역 그리고 관련 서적의 출판 수량에서 보면 中國->韓國의 흐름이 압도적이다.

2-3동아시아인들의 ‘우리 의식(we-ness)’ 조직. 이는 ‘동아시아인의 동아시아’를 발견하고 상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를 위한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共有可能한 思想資源의 發掘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孫歌의 언급은 의미심장하다. “한 시대 앞서 竹內好는 中國과 魯迅을 가장 풍성한 사상의 자원으로 바꿔놓았다. 나는 역의 방향에서 竹內好를 아시아의 사상자원으로 삼고 싶다.”(쑨거 2007, 22) 日本의 竹內好가 魯迅을 발굴해 日本에 소개하고 中國의 孫歌가 竹內好를 中國에서 재해석함으로써 中國과 日本의 지식계는 한결 공감대가 형성되고 소통이 되고 있는 느낌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각국에 산재한 수많은 사상자원들이 국민국가의 경계를 가로질러 동아시아의 양국 이상의 지역에서 공유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安重根의 東洋平和論, 韓龍雲의 宇宙的 革命論 등도 동아시아인의 훌륭한 사상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韓國인들에게만 專有되어서는 곤란하다. 中國과 日本의 비판적 지식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할 때 그것은 자국중심주의의 증거가 될 뿐이다.

공동의 사상자원 만들기의 예: 韓中文學, 동아시아문학의 교류. 超國的 文學刊行物. 2005년 결성된 ‘동아시아 出版人會議’는 “근대 이전 동아시아는 한자를 기반으로 상당히 넓은 지적 교류를 해왔지만, 근대화와 냉전을 겪으며 그 교류가 끊어졌다. 현대 동아시아가 위치한 지적 기반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좋은 책을 읽는 일이 시급하다”라는 공동 인식 아래 2009년 ‘동아시아 100권의 책’을 선정했다. 한․중․일 각 26권, 타이완 15권, 홍콩 7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아시아 독서공동체’라는 명분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전후 맥락으로 보아 자국의 대표 주자를 스스로 선정하는 방식이고 각국 정부의 지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국가의 경계에 묶여 있다. 韓國의 경우 이 사업을 주도한 단위는 민간 출판사이고 韓國측 26권을 선정한 것도 민간 위원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1차 목록만으로 총체적 평가를 하기는 이르지만, 동아시아 사상자원의 문제의식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2-4‘否定의 否定’을 指向하는 文化橫斷(transculturation). 이는 자문화와 타문화의 횡단을 통해 새로운 주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전제하는데, 그 경로는 우선 타문화에 심층 진입한 체험을 통해 자문화를 되먹이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孫歌는 日本을 가져다 中國을 고찰하는데, 이는 그가 영향을 자인하는 竹內好의 방법이었다. 竹內好는 아시아―주로 中國―를 가져다 종전 후 日本을 고찰했었다. 竹內好를 본떠 孫歌에게 日本 공부는 량치차오(梁啓超) 등의 ‘길 찾기’―“‘日本’에서 길을 취하여 ‘中國’으로 되돌아오리라”―라는 기나긴 여로와 유사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은 ‘가고’ 한번은 ‘돌아오는’ 과정에서, 의심할 나위 없이 확고했던 ‘中國’과 ‘日本’에 대한 感受方式이 변하기 시작했다.(쑨꺼 2003, 35) 그는 근현대 日本사상사를 고찰하면서 만난 “竹內好를 따라 日本의 근대로 들어갈 수 있었으며, 그로부터 魯迅에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 계발되어 다시 中國의 근대로 들어갈 수 있었다.”(쑨꺼 2003, 51) ‘부정의 부정’을 연상케 하는 이 여정은 동아시아에 관심을 가지는 지식인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다. 孫歌는 우연한 계기들에 의해 이 과정을 충실하게 거쳤고 이 과정을 통해 그는 ‘(동)아시아의 원리성’과 ‘역사 진입’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단순하게 몸만 가고 오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 부정의 과정을 통해 자국 이외의 문화 가치를 습득하고 그것을 자국화(domestication)시키는 과정이 요구된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崔元植은 ‘동아시아인의 共感覺’을 제창했다. “충돌에 잠재된 친교에 대한 갈증과 신민족주의의 균열을 자상히 독해하면서도 우리 안에 억압된 아시아를 일깨움으로써, 韓國人이면서, 日本人이면서, 中國人이면서도 동시에 동아시아인이라는 공감각(共感覺)을 어떻게 계발하는가, 이것이 문제다.”(최원식 2009, 43. 강조-원문)

2-5周邊의 觀點. 주변의 관점은 우리에게 철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崔元植은 세계체제의 中心/周邊(邊緣)이 동아시아 안에서도 복제되는 사실에 유념하면서 동아시아 내부의 불균등에 주목한다. 그 동안 동아시아론이 이 지역의 중심국가들 ‘중심’을 진행되었던 사실을 지적하면서 북한과 타이완․홍콩․마카오와 오키나와(옛 流球)의 관점에서 동아시아라는 周邊的 視角을 다시 周邊化 하는 二重의 作業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최원식 2009, 69-70) 그러므로 그의 주변의 관점은 국민국가의 안과 밖에 포진한 독특한 주변부와 함께 국민국가들의 경계를 가로질러 분산된 디아스포라의 문제 또한 중요함을 지적해낸다. 그의 주변의 관점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기존의 틀을 싸안되 동아시아론의 국가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실험적 거점으로서의 ‘주변의 관점’이다. 그는 동아시아의 안팎을 주변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보는 작업을, 大陸中心의 觀點(中國)·海洋中心의 觀點(日本)·韓半島 據點(hub)의 觀點, 이 모든 관점을 비판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제4의 선택으로 주목하고자 한다.(최원식 2009, 70-71) 崔元植의 ‘주변의 관점’은 단순하게 중심에서 벗어나 주변에서 선다는 것을 넘어 중심까지 아우르는 주변의 관점이다. 孫歌 또한 오키나와를 통해 日本의 징후를 관찰하고 그것을 日本 국내 문제로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중일 관계 나아가 동아시아의 문제로 볼 것을 경고하고 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의 집단자결을 ‘옥쇄’로 몰고 가는 황민화 기술을 반대하는 오키나와인들은 “日本 내부에서 항쟁하여 싸운다기보다는 日本의 전쟁 책임을 추궁하는 동아시아 권역(region)의 유기적인 한 부분이 되었다.”(쑨거 2009b, 431; 孫歌 2008)

2-6개방적인 통합 모델 창출. 孫歌는 지식인들이 동아시아의 역사과정 자체를 직시해야 하며 그것이 타자와 주체를 통합해온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직시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고통스럽게 자신을 열어가는 과정은 서방의 이론으로부터는 직접적으로 도출해낼 수 없는 그러한 認識論的 視角을 요청하게 될 것이며 이는 동아시아의 역사 그 자체로부터만 비롯될 수 있을 것이라 진단했다. 바로 이것을 원리화하는 것이 동아시아 認識의 思想課題라는 것이다.(쑨거 2009, 49) 魯迅과 竹內好 등이 그 선구자이며 그들의 사상 자원을 국가 경계를 횡단하여 재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 崔元植 또한 韓國 圓佛敎를 創宗한 少太山의 ‘會通的 思惟’와 ‘自利利他 思想’의 동아시아 공유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崔元植은 동아시아를 代案 資源 또는 媒介項으로 설정하자고 제안한다. 동아시아를 궁극적 목표로 삼을 때 동아시아중심주의라는 또 다른 패권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꿈꾸는 後天世上이란 국가·지역·계급·인종·젠더의 차이가 지워지는 大同세상인데 동아시아론도 그로 가기 위한 小康에 준하는 것이기 때문”(최원식 2009, 70)에 그것은 과정적 매개항일 뿐이다. 과정과 목표의 변증법을 고려한다면, 소강에 충실할 때 대동을 바라볼 수 있는 법. 동아시아의 현재 과제에 충실하게 대응할 때 후천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2-7中國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인식. 복잡한 지정학적 현실에 대한 인식. 동아시아의 지정학은 유난히 복잡하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한반도(또는 朝鮮반도)의 韓國과 朝鮮, 동아시아에 위치하면서도 부재하는 日本, 그와 반대로 동아시아에 부재하면서도 현존하는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동아시아에 속하면서도 그 경계를 넘어서는 中國. 孫歌는 “中國이 동아시아․남아시아․서아시아 및 매우 드물게 언급되는 단위이기는 하지만 ‘북아시아’와 모두 접하고 있다 보니 동아시아라는 틀에 몰입하기 어렵다”(쑨거 2009, 13-4)고 진단하고 있고, 崔元植도 “中國은 동아시아의 범위를 넘어서면서도 동아시아의 일원이기도 한 양면성을 가졌다.”(최원식 2009, 50)고 하고 있다. 이렇게 복잡한 지정학적 요인은 동아시아를 하나의 단위로 범주화하기 어렵게 만든다. 지정학적 실체에 얽매여서는 안 되지만 그것을 무시할 수도 없다. 이를테면 최근의 북한 핵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된 6자회담은 동아시아의 현실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3.우리는 동아시아를 ‘差異의 局面(dimension of difference)’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를 고정된 실체로 볼 것이 아니라, 각 국가의 차이들이 나타나는 국면, 차이에 기반을 둔 동아시아 정체성, 그리고 그것을 정의하기 위해 동원된 차이들의 부분집합 또는 차이의 절합(articulation)을 자연화 하는 과정으로 보자는 것이다. 아울러 ‘차이의 국면으로서의 동아시아(作为差异之维度的东亚)’를 ‘妥協的 平衡(compromise equilibrium)’으로 설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각국의 서로 상충하는 이익과 가치가 모순적으로 혼합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동아시아를 일국의 정체성 또는 패권의 통합력과 타국 정체성의 저항력 사이의 투쟁(또는 각축)의 장으로 설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동아시아 大衆文化의 超國的(transnational) 流動과 受容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香港의 대중문화인 칸토 팝(Canto-pop)에 이어 日本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 日流(J-pop), 그리고 韓國의 영화와 음악, 드라마를 앞세운 韓流(K-pop)가 동아시아 지역에서 초국적으로 수용되어온 역사적 사실, 나아가 張藝謀 및 李安 등의 명망 있는 감독과 中國적 무협을 앞세운 中國 大衆文化(C-pop)의 崛起는 동아시아의 文化的 正體性의 ‘脫領土的 文化橫斷(deterritorial transculturation)’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동아시아 각국의 영화 시장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는 合作映畵, 여성연대운동과 같은 동아시아 지역 民間連帶活動, 國際結婚, 留學 등은 국가의 경계를 횡단하면서 동아시아를 지역화(regionalization)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 아시아(social Asia)’를 제창하며 아시아 차원에서 사회적 최저선(social minimum)과 사회헌장(social charter)의 실현, 아시아에서의 카지노자본주의(casino capitalism)의 확산 방지 등을 주장하는 조현연과 박은홍은 “국가 주도의 지역협력(state-centric regionalism)과 자본 주도의 지역협력(capital-centric regionalism)을 뛰어넘는 ‘참여지향적 지역협력(participatory regionalism)’의 실현”을 주장했다.

이상의 검토를 통해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식인들이 不謀而合으로 소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비판적 지식인들의 연대와 관련해서, “긴장관계를 연대의 형식으로 삼아 파악하는 능력”(孫歌 2008, 21)을 배양해야 한다는 孫歌의 언급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 인터넷을 통해 분출되곤 하는 한·중·일 세 나라 젊은이들의 민족주의 전쟁이란 반일, 반중, 반한의 형태로나마 폭발하는 상호관심의 표출이라는 역설”(최원식 2009, 41)로 보는 견해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顚覆의 逆說이라 할 수 있다.

 

주요 참고문헌

孫歌(2008.10), 「關於後東亞論述的可能性」, 薛毅`孫曉忠編, 『魯迅與竹內好』, 上海書店出版社, 上海.

孫歌(2008), 「觀察日本的視覺」, 『臺灣社會硏究季刊』제69기.

쑨꺼(2003), 류준필․김월회․최정옥 옮김, 『아시아라는 사유공간』, 창비, 파주.

쑨거(2007), 윤여일 옮김,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그린비, 서울.

쑨거(2009), 김월회 옮김, 「동아시아 시각의 인식론적 의의」, 『아세아연구』제52권 1호,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서울.

쑨거(2009b), 임춘성 옮김, 「日本을 관찰하는 시각」, 『문화/과학』56호.

임춘성(2010), 「동아시아인의 정체성 형성, 장애와 출구: 비판적 동아시아담론을 중심으로」, 『문화/과학』 61호, 문화과학사, 서울.

林春城(2010), 「通过东亚批评性话语试看东亚自我认同」, <當代文化硏究網>, 上海大學中國當代文化硏究中心 (http://www.cul-studies.com/Article/contribute/201002/6885.html)

최원식(2009),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창비, 파주.